전 송파구청 구청장 자리에서 자치 행정의 한 시대를 다지고, 영가회의 원로회원으로 자취를 잇고 있는 이유택(李 유 택) 회원. 2018년 3월, 영가회 40주년의 자리에서 후배 회원들에게 부치는 글을 직접 적어 《영가회 40년사》에 자취를 남긴 한 어른.
세명대학교 국제교수와 재단이사를 지낸 권기성(權 笆 成) 회원. 2016년 한여름 중국 산동성 태안·곡부·추성을 직접 다녀와 〈鄒魯之鄕의 本鄕에 대한 感懷〉를 영가회 40년사에 기고하고, 〈陽宅과 陰宅의 妙理〉로 풍수지리의 자취를 한 글에 풀어낸 한 학자.
1977년 미국 유학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 이상두 안중 2년 선배의 권유로 영가회에 처음 입회한 김원(金 원) 회원. 전 서울시립대학교 부총장. 한국전쟁 직후 안동고등의 초창기 시절 만난 두 은사 권상철·김석헌 선생을 한 글에 단정하게 갈무리한 학자의 자리.
전 법무부차장으로 한국 법조의 자리를 짊어진 김경한(金 慶 漢) 회원. 한국법치재단 이사장으로 한 시대의 법치를 가까이서 다진 한 분이자, 《영가회 40년사》에 〈母情의 세월〉을 직접 적어 한 어머니에 대한 마음을 한 자리에 풀어 놓은 사람.
1972년 청와대 비서실 파견 근무 시절, 매월 1회 오찬을 겸한 〈永嘉회담〉의 연락간사를 맡아 영가회의 가장 첫 시발을 만든 강민창(姜民昌) 회원. 재경안동향우회 제8대 회장과 전 치안본부장의 자리를 거치고, 80세에 들어선 자리에서 영가회 40년사에 남기고 싶은 말을 직접 기고한 한 어른.
전 국회의원·전 아시아장을 이어 오신 오영남 회원이 — 1999년 영가회 2대 류목기 회장기의 정기 모임 자리에 2부행사를 위해 국악인 5명을 초청해 주신 결. 영가회 회가 한 문화 공연으로 단정하게 펼쳐진 자리.
대명대학교 총장이신 권영조 회원이 — 1999년 영가회 2대 류목기 회장기의 정기 모임 자리에 새해 카랜다 120부를 협찬해 주신 결. 회원 전원이 한 부씩 받아 한 해를 단정하게 시작할 수 있도록 받쳐 주신 자리.
한국전쟁 직후 안동고등의 초대 교장으로 학생들과 함께 진흙벽·짚 지붕으로 가교사를 지으신 결, 1968년 안동향우회 초대 회장에 신임된 결, 후일 안동진흥대학교 이사장의 결까지 — 안동 교육·향우회·영가회를 한 평생 받쳐 오신 권상철 선생의 평전. 영가회 글 챕터 회원 기고문 세 곳에서 짚어진 결.
2008년 1월 9일 영가회 4대 허동진 회장기 신년하례회 자리 — 이희범 안동대 총장과 함께 하이닉스 사장 취임 축하를 받으신 김중감 회원. 한국 반도체 산업의 한 자리를 받쳐 오신 안동인의 자리.
영가회 1대 김해길(金海吉) 회장의 두 박사 아우 — 김호길(金浩吉) 포항공과대학교 총장과 김명일(金明日) 한동대학교 총장. 한 안동 가문이 한국 사학의 두 대학을 받쳐 오신 결을 한 자리에 모은 결. 김원 회원의 〈내가 만난 은사 두 분〉에 짚어진 자리.
1980년대 초 영가회 초창기의 받쳐 주신 김계헌(金啓憲) 선배의 평전. 류종묵 5대 회장의 회고문에서 〈정림 멤버이신 김계헌 선배의 입회 권유에 따라 시민회관 커피숍에 들어선 결〉의 자리. 정인고예서 동남배들에게 향수를 가르치신 결의 분.
1998년 10월 24일 2대 류목기 회장 취임식(세명대 강당, 84명 참석) 자리에서 부회장으로 신임된 강재우 대명해상 회장. 1999년대 후반 영가회 자리에 〈만찬 식대〉 협찬으로 회의 받쳐 주신 자리.
2008년 1월 9일 영가회 4대 허동진 회장기 신년하례회 자리에서 — 영가회 발전에 크게 공을 세운 강보영 안동병원 이사장에게 특별 공로패가 증정된 결. 1100병상의 초대형 안동병원이 경북지역의 의료 메카로 자리 잡은 풍경.
1999년대 후반 영가회 2대 류목기 회장기의 자리에 — 안동시장으로서 안동소주 1상자를 협찬해 주신 정동훈 안동시장의 자리. 영가회와 안동시청이 한 호흡으로 만나는 한 자리.
통일부 정책 분야의 학자 정부락 교수가 — 2015년 9월 17일 영가회 6대 김봉구 회장기 임시총회 자리에서 〈북한정세와 남북관계의 변화전망〉을 주제로 특강하신 결. 회가 한 시대의 큰 결을 함께 마주하는 자리로 옮겨간 풍경.
1943년 전북 전주 출생, 연세대학교 의학과 졸업한 산부인과 원장 홍영재 박사가 — 2001년 대장암 3기 판정 후 6개월 항암치료을 통과해, 〈암을 넘어 100세까지〉라는 결의 특강을 전국에 펼치신 자리. 2011년 4월 19일 영가회 임시총회 자리에서 회원들에게 한 시간을 전해 주신 자리.
삼보컴퓨터를 창립하시고 한국 토종 IT의 선구자로 결을 이어 오신 이용태(李龍兌) 박약회 회장의 평전. 박약회(博約會)는 안동의 전통 결을 바탕으로 한 인성·예학 교육의 모임으로 — 영가회와 안동을 매개로 자주 닿아 온 단체. 2018년 10월 4일 박약회 사무실(종로구 수송동)에서 영가회 회원들과 행복나눔아카데미 운영위원회를 함께 마련하신 결.
마스터 발행계획에 〈이재범 — 서울산업대 총장 당선〉(2003.4.15 4명 축하연) 으로 자리 잡힌 자리입니다만, 《영가회 40년사》 PDF 원문(책 107쪽) 확인 결과 같은 시기 같은 자리의 〈서울산업대 총장〉은 〈이희범(李熙範)〉(/archive/saram/myungsa-lee-huibeom)으로 확인됩니다. 〈이재범〉이라는 별도 회원이 회보·회의록에서 확인되는 대로 정성껏 다시 작성하겠습니다.
1972년 상공부 공무원 출발부터 산업자원부 장관·서울 산업대학교 총장·STX에너지·중공업 회장·제5대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회장(2011년)까지 — 한국 상공·산업을 평생 받쳐 오신 정통 상공관료 출신 이희범(李熙範) 회원의 평전. 2003년 4월 4명 축하연(소피텔앰배서더) 과 2011년 1월 5대 류종묵 회장 취임식(프레지던트호텔) 두 자리에서 영가회의 결과 만난 분.
2011년 1월 7일 5대 류종묵 회장 취임식(프레지던트호텔, 120여 명 참석) 자리에 외부 명사 세 분 중 한 분으로 함께해 주신 권영복(權榮復) 새서울그룹 회장의 평전. 안동에 직접적인 출생지의 연이 깊지 않으시나, 안동 출신 산업계 인사들과의 오랜 동행으로 영가회의 결과 닿은 결.
권령건 안동대학교 총장은 2003년 봄에 안동대 총장으로 영전하신 자리. 영남대와 고려대 대학원 거쳐 모교에서 박사 과정을 마치고 1983년 안동대 행정과 교수로 부임, 이후 2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고향에서 후학의 길을 걸어오신 — 이른바 〈선비의 대표적인 표상이다〉 라는 결의 평전. 《영가회 40년사》 3대 회장기 약사(책 108쪽) 자료 직접 정리.
2010년 6월 15일 18대 후반기 국회사무총장에 총 투표수 177표 중 찬성 167표·반대 7표·기권 3표로 임명 확정된 권오을 회원의 평전. 경북 안동출신, 안동중·경북고·고려대 정외과 출신으로 30대에 15대 국회에서 정계에 입문한 3선 의원. 17대 대선 한나라당 중앙선대위 유세지원단장, 18대 대선 새누리당 총괄본부 부본부장 등 매 순간이마다 당의 중책을 맡은 결.
전 서울시립대학교 부총장으로 한 시기를 통과하시고, 2003년 봄에 장관급 중앙도시계획위원장에 오르신 김원(金 원) 회원의 평전. 같은 분이 《영가회 40년사》 회원 기고문 〈내가 만난 은사 두 분〉(345~347쪽) 의 저자이기도 한 자리.
안동독립운동기념관을 오래 지켜 오신 김희곤(金喜坤) 회원의 평전. 《영가회 40년사》(책 413쪽~) 에 직접 기고하신 〈안동독립운동의 특성〉 으로 — 1894년 안동의병 발상부터 326명의 독립유공자 배출까지을 가장 단정하게 정리하신 결의 회원. 영가회와 안동독립운동기념관이 매년 결을 잇는 자리.
안동농학교를 졸업한 뒤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다 뒤늦은 결심으로 24살에 행정고시 3등으로 합격하신 결로부터, 2003년 봄 통계청장에서 재정경제부 차관으로 영전하신 자리까지 — 영가회 회원 김광림(金光琳) 차관의 평전. 《영가회 40년사》 3대 회장기 약사(책 107쪽) 자료 직접 정리.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 이사장 황현탁(黃鉉鐸) 회원의 평전. 《영가회 40년사》(409~412쪽) 에 직접 기고하신 〈안동을 소재로 한 예술작품과 오페라 〈아! 징비록〉〉(/archive/geul/geul-jingbirok-opera) 으로 — 안동의 옛 이름부터 류성룡의 《징비록》·대구 로얄오페라단의 창작오페라 〈아! 징비록〉(2012년 안동 시연·2013년 KBS홀) 까지를 한 글에 단정하게 묶은 결의 회원.
2017년 5월 26일(금) 프레지던트호텔에서 6대 김봉구 회장의 부득이한 일신상 이유로 임시총회가 열려 상임부회장이셨던 김계동 회원이 만장일치로 차기 회장에 선임된 자리. 〈친목단체로 성장·젊은 산업회원 영입(입회비 30만원→20만원)·한국정신문화 수도을 자기 성찰로 잇는 결〉 세 가지 우선순위로 시작하신 7대 회장의 평전.
2014년 12월 9일 종로 안동국시집 이사회에서 만장일치로 선임되어 2015년 1월 9일 프레지던트호텔 신년하례회에 120여 명이 함께한 자리에서 취임하셔서 2016년 12월 31일까지 2년을 이끄신 6대 김봉구 회장의 평전. 〈배운다는 것은 내적으로 즐겁고, 자만·오만·교만에 빠지지 않도록 인성을 키워준다〉는 결로 영가회의 받쳐 주신 학자 회장.
2011년 1월 7일 프레지던트호텔에서 120여 명이 함께한 신년하례식과 정기총회로 취임하셔서 2014년 12월 31일까지 4년을 이끄신 5대 류종묵 회장의 평전. 안동고등학교·서울대학교 상과대학·1978년 (주)풍국 대표이사 취임. 〈출선수범·책임경영·신뢰경영·천직봉행〉의 네 결로 짚어 두신 중소기업인의 자세.
2007년 1월 10일 프레지던트 호텔 19층 신세계홀에서 100여 명이 함께한 신년하례식과 정기총회로 취임하셔서 2010년 12월 31일까지 4년을 이끄신 4대 허동진 회장의 평전. 영남일보·경향신문 기자에서 코오롱그룹·풍림화섬으로 옮기신 결, 〈안동 답방의 결〉을 정기 행사로 자리 잡게 하신 결.
2003년 1월 15일 소피텔앰배서더 호텔 신년하례식과 함께 취임해 2006년 12월 31일까지 4년을 이끄신 3대 금창태 회장의 평전. 영가회를 〈단순한 친목단체가 아닌 안동의 전통문화를 시대의 변화에 맞추어 계승·발전시키는 야망 문화단체〉로 승화시키며 — 〈영가문화상(永嘉文化賞)〉을 제정하신 결의 주인공.
1998년 10월 24일 세명대학교 임시총회에서 84명 참석 가운데 신숨된 2대 류목기 회장의 평전. 안동시 임동면 박곡리 출신, 〈클린 맨(Clean Man)〉으로 불린 풍산금속 500% 명품가의 후손. 안동사범학교·서울대 사범대학·고려병원 행정부원장·㈜만술 상호저축은행장 등을 두루 거치신 결.
1977년 3월 26일 덕수빌딩 지하1층에서 열린 영가상록회 창립총회에서부터, 1998년 10월 23일 자리를 류목기 2대 회장에게 넘기실 때까지 — 21년 동안 영가회의 첫 자리를 지키신 김해길 초대 회장의 평전. 《영가회 40년사》 제2편 〈역대회장의 약사〉 (책 27~29쪽) 자료 직접 정리.
영가회보 〈안동의 경제인〉 시리즈 여섯 번째 회 — 이정석(李廷錫). 봉화·청송·안동에서 양조업·건축업 등 손대는 사업마다 성공 신화를 한 결로 쓰신 분. 1회 국담 권태연부터 6회 이정석까지 한 시대 한 결의 안동 기업가 자취가 한 자리에 모인 모습.
한 시대 한 결의 안동 독립운동가 〈일송(一松) 김동삼(金東三)〉의 자취. 만주에서 한 결의 통합 독립운동을 이끈 '만주벌 호랑이'. 김희동 회원이 한 호의 자리에서 풀어 둔 한 결의 인물.
영가회보 〈안동의 경제인〉 시리즈 다섯 번째 회 — 정현섭. 한 시대의 한 결로 정미·건축·광업 등 기업을 경영하다가 정치인의 길도 함께 걸은 분. 한 결의 경제와 한 호의 정치 두 자취가 한 자리에 모인 한 호의 가장 단단한 인물 결.
영가회보 〈안동의 경제인〉 시리즈 네 번째 회 — 권용철(權容哲, 근대 기업인). 일제 강점기 안동에서 독립·계몽 운동을 하다가 한약재 사업으로 한 결의 길에 나선 분. 한 결의 항일과 한 결의 경제 자취가 한 호에 단단하게 짜인 자취.
영가회보 〈안동의 경제인〉 시리즈 세 번째 회 — 김흥학(金興學, 전 신원어패럴 사장). 안동에서 농산물 및 종합유통회사를 설립하고, 한 결의 교육사업에도 앞장선 한 자리. 의류 대기업 신원어패럴의 사장을 지내신 분이자 안동의 한 결의 자취를 한 호 더 단단하게 받쳐 두신 분.
영가회보 〈안동의 경제인〉 시리즈 두 번째 회. 일제 강점기~광복 초기 안동에서 양조·곡물 회사를 설립하고, 안동 최초의 백화점 경영에도 참여한 운치림(雲致林)·윤서환(尹瑞煥) 형제. 사업 성공의 결을 한 결의 불우 이웃 돕기·교육 사업에까지 단정하게 잇은 한 자리.
영가회보 〈영가 사람들〉 시리즈의 첫 회. 1915년 안동주조회사를 설립하고 '제비원 소주' 상표로 안동소주를 서울·만주·일본으로 판매한 국담 권태연(權泰然·1881~1947). 마포(삼베) 조합을 만들어 안동포의 품질을 끌어올린 상공인이자, 1934년 갑술년 수해 때 쌀 500가마니를 쾌척한 사회사업가. 일제 강점기 안동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몸소 실천한 인물.
2021년 10월, 안동 민속 발굴에 헌신해 온 하남(河南) 류한상(柳漢相·1926~2021) 전 안동문화원장이 96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1970년대 명맥이 끊겼던 하회탈춤을 발굴해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제69호 지정에 힘쓴 한 자취, 매카타거 교수에게 하회탈을 소개해 '표정 변화가 일어나는 탈'로 세계적 주목을 받게 한 자리, 천주교 그레고리오 기사 훈장을 받은 사군자의 한 자리 — 그리고 한 호에 함께 게재된 유고 서화 두 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