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 안내 — 《영가회보》 8-1호(2022년 겨울호) 4면 〈영가 사람들〉 시리즈의 첫 회. 안동을 대표하는 명산물 '안동소주'를 일제 강점기에 대량 상품화한 상공인이자, 갑술년 수해 때 쌀 500가마니를 내놓은 사회사업가 국담 권태연 선생을 다룬 자리.
국담 권태연(權泰然·1881~1947)
국담 권태연(權泰然·1881~1947)의 본관은 안동이다. 안동시 율세동에서 태어나 구한말 중추원 의관, 궁내부 검구관, 법부 침서관을 역임했다.
'제비원 소주' — 원조 안동소주의 대량 상품화
국담은 수백 년간 가양주로 명맥을 유지해 오던 안동 권역의 증류식 소주를 일제 강점기에 양산 체제를 갖췄다.
당시 국담은 1915년에 안동시 남문동에 안동주조회사를 설립, 〈제비원 소주〉라는 상표로 안동소주를 생산하여 서울·만주·일본 등지로 판매하면서 전국적으로 성가를 높였다.
안동의 대표적 명산물로 자리잡았던 안동소주는 국담 사후인 1969년 정부의 양곡관리법에 의해 생산이 중단되었다가 1987년 민속주의 무형문화재로 안동소주가 대량 상품화되면서 부활하게 된다.
안동마포조합 — 안동포의 품질 향상
국담은 또 1913년 '안동마포조합'을 설립했다. 마포조합은 안동포 중개 및 기술개량 조합이었다.
안동 지방의 각 가정에서 수공업으로 생산하는 안동포를 집산하면서 마포(삼베)의 품질을 향상시키고 판매를 조직화하여 안동의 특산물로 전국적으로 알려지게 했다.
갑술년 수해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구한말 안동지역의 최대 부호였던 국담은 안동 사람들에게 최대의 흉수로 기억되는 1934년의 일명 갑술년 수해 때에는 쌀 500가마니를 쾌척하였다고 하니 재력도 짐작되거니와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몸소 실천한 사회사업가였다.
교육사업 — 안동공립농림학교·안동공립고등여학교
국담은 교육사업에도 앞장섰다. 당시 안동에 우는 교육기관이 없었다. 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한 그는 학교 설립 인가를 받는데 앞장섰고, 안동공립농림학교(안동농림고등학교, 1933년 설립)·안동공립고등여학교(안동여자고등학교, 1942년 설립) 설립을 위하여 거액의 돈과 대지 등을 희사하였다.
편집실의 정리
영가회보가 〈영가 사람들〉 시리즈 첫 회에서 국담 권태연을 짚은 까닭:
- '영가 사람들'의 한 뿌리 — 구한말~일제강점기 안동의 한 상공인·사회사업가의 자취를 한 호에 풀어 두신 자리
- 안동소주·안동포의 대량 상품화 — 안동의 두 명산물을 일제 강점기에 한 호로 끌어올린 인물
- 갑술년 쌀 500가마니 — 안동의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가장 단정한 사례
- 안동농림·안동여고의 설립자 — 영가회 회원 중 안동농림·안동여고를 거친 분들에게 가장 큰 빚을 진 자취
지역 특성에 걸맞은 창업과 경영수완으로 안동의 경제를 선도하고, 시대를 앞서가는 기업가 정신을 가졌던 안동의 대표적 기업인이자 사회사업가.
출처: 《영가회보》 8-1호 (2022년 겨울호) 4면 〈영가 사람들 (1) 원조 '안동소주' 설립한 상공인·사회사업가 — 국담 권태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