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 안내 — 이 글은 《영가회 40년사》 제2편 〈역대회장의 약사〉 — 제1대 김해길 회장(책 2753쪽, PDF 02) 의 첫 자리(2729쪽) 을 편집실이 한 호흡으로 정리한 자리입니다. 1대 회장기의 모임 자리들은 모임 챕터(/archive/moim/) 의 1대 회장기 묶음 글(/archive/moim/1dae-jeonggi-haengsa-mum) 과 짝이 되어 자리합니다.

초대 김해길회장 취임의 결

"초대 김해길회장은 1977.10.26 정립총회(류혁인·이상두·권홍영·송오엽·김해길) 등 다섯 명이 최초로 신숨되어 취임하였다."

초창기에 — 사무실은 중구 덕수빌딩(장원석 회원 소유) 에서 무료로 제공받아 사용했으며, 회비도 없이 자발적인 기부금으로 운영했다는 결.

초창기에는 — 영가회와 상록회의 합성어인 〈영가상록회(永嘉常綠會)〉라 불렀으나, 후일 〈영가회(永嘉會)〉로 개칭했다는 결.

김해길은 — 초창기의 성립취지나 "친목과 화합" 이었으나, 입회 회원의 자격과 조건을 엄격히 제한함으로서, 회원수가 급격히 늘지 않았을 뿐더러, 회원 각각의 긍지도 대단했었다는 결.

김해길은 후임 처음 못지첫 후에 오랜 친목 끝에 — 1968년 10월에 안동사범학교 출신 류복기(주. 풍산 총괄부회장) 회장을 추천하였다는 결. 김해길은 1998년 10월 23일까지 오랫동안 연임했다는 결.

영가회 탄생·태동의 자리

우리 고향 안동에서 보따리 들고 천 리 타향 서울로 올라와서 — 삶의 터전을 잠은 재경 안동인들과 친목과 유대를 위해 모임을 만들 필요가 있다는데 뜻을 함께한 분들:

"류혁인·이상두·학기홍·손병도·김명선·김지락·장원석·김해길·권홍열·김명선·김시효·권화남·권태수·이용태·윤정근·이은승·김계행·류동주·장상섭·송보엽·권태완·장교원·변동신·권오기·권화기·천부서"

— 들이 — 〈용수산〉 남강을 음식점에 모여 4~5차에 모임을 갖고 영가상록회를 발족시켰다는 결.

회칙은 — 이 상록회원이 호선을 작상이고 하고, 회원의 추천은 오는 모임 사람들이 각자 한 두 사람을 데리고 참석하기로 하였다는 결. 그리고 — 추천할 사람은 반드시 의모임을 첫지적으로나 사업적으로 이용할 우려가 있는 사람은 베제하야아 하고, 복에 회춘는 회나非常仁로 하여(안동인의 특수한 기질 때문에 전에도 수차 모임을 갖지 못하고 해체 되고 만 쓰라린 경험을 토로 함) 구성됨을 점심하여 완전한설성될 때 까지 추천된 사람의 점립이 합리시키기로 하였다는 결.

회장은 — 안동농업 출신의 김해길씨로 심무를 맡기를 권청하는 안동중고등 출신으로 한 創土상비에 참여한 權和벌씨를 선임했다는 결.

1977년 3월 26일 창립총회

영가상록회는 오랜 산고 끝에 아래와 같이 창립총회를 가졌다는 결.

  • 일 시: 1977.3.26. 18:00
  • 장 소: 덕수빌딩 지하1층 연회장(중로구 견지동)

참석자 61명 (가나다순):

柳赫仁·李相斗·權應然·宋寶烈·孫東度·金海吉·南柱延·趙国際·金命中·金林孝·權飛仁·金能高·李三勳·權榮鳥·南時鎬·金大民·權東斗·石萬国·金村乙·金中德·權成洙·金鎮恩·權永宗·金性化·李相五·金浩吉·金牢吾·金牢德·柳福基·李用泰·張三萬·權志洙·金舟英·姜碩鏞·徐昌煥·權妹·金鼎洙·權永鼎·李龍允·金永燁·連東珠·金妹久·權判鎬·金東鎬·權野旭·千鼎石·權五烈·孫洪均·李昌大·趙輝家·南起鈍·李萬周·金 源·柳東柱·柳寒罫·金昌頽·趙樞基·金永世·李華秀·尹政模 61명 참석

회의 진행과 의결사항

  • 회의진행: 金知龍·柳業柱
  • 참석회원소개: 柳業柱
  • 창립취지 및 경과보고: 張元碩
  • 의결사항: 회칙상정(柳赫仁 회칙 설명) 원안대로 통과
  • 임원선출: 준비 모임에서 결정된 사항 상정안건 전부 통과
  • 기타사항: 금후 정치성은 회장에 배제하고, 신입회원은 기존회원 3인 이상의 추천으로 회장단에서 심의 후 결정
  • 화비: 초창기는 당분간 화비없고 자발적인 기부금으로 운영키로 결의
  • 사무실: 당분간 장원석 회장 소유 덕수빌딩 사무실 무료 이용
  • 회장인사: 金海吉 회장인사 (임원진 경례호)
  • 만세삼창: 金虎孝
  • 이행 폐회선언: 金知龍

"이렇게 영가상록회가 앞으로 펼쳐질 화양한 미래 비전을 꿈꾸면서 시중 웃음으로 화기애애한 가운데 탄생되었다."

21년, 영가회의 기본 골격이 자리한 시기

1977년 3월 26일 창립부터 1998년 10월 23일까지 — 21년 동안 김해길 회장은 영가회의 회장석을 지키셨다는 결. 회를 만든 사람이 회를 가장 오래 지킨 사람이기도 했던 셈입니다.

21년 사이에는 영가회의 기본 골격이 모두 잡혔습니다.

  • 정기 모임의 횟수와 자리의 모양
  • 신년하례·송년회의 결
  • 회비의 운용
  • 안동에서 올라오신 향우 분들을 모시는 자리의 절차
  • 〈영가상록회〉에서 〈영가회〉로의 개칭
  • 회보 1호(1982)·2호(1998) 발간
  • 회칙 1차 개정(1983)·2차 개정(1998)

이 모든 결이 — 초대 회장의 결정과 합의를 통해 다듬어졌다는 결. 영가회의 가장 첫 골격이 김해길 회장의 자리한 21년의 시기.

〈무색 무취〉의 결

류종묵 5대 회장의 회고문(/archive/geul/geul-andong-saramdeul) 에서 김해길 1대 회장은 — "전형적인 안동 유립(儒林) 의 표본" 으로 짚으십니다. 항상 자신을 낮추고 안동의 전형적인 어휘와 억양으로 구수하고 정답을 끌어낸 분.

20년 장기 집권의 비결을 묻는 김원 회원께 김해길 회장께서 직접 답하신 한 말씀(/archive/geul/geul-eunsa-dubun):

"위이 빠라, 나처럼 무색 무취한 사람 어디 있나. 옥심이 없으니 사람들이 나를 무관하게 놓아 줘 자리에 앉히는 게 아니겠어?"

— 한 회를 21년 지키신 분을 가장 짧게 짚어 주는 자리.

영가회 창립 동기의 한 결

류종묵 5대 회장이 옮겨 적어 두신 — 김해길 1대 회장의 영가회 창립 동기:

"안동 사람이 의 알 만한 사람들은 같고 지내자."

회원 자격과 회칙·회의 목적을 얼마나 곱고 분명하게 표현하셨는가? 그러기에 유형(儒型), 특유의 차분심과 까다로움이 없는 〈안동인의 모임 영가회〉 를 20년간 이끄셨던 결.

1998년 — 한 시대을 맺다

1998년 5월 4일 임시총회와 1998년 10월 24일 류목기 2대 회장 취임식을 통해, 1대 회장기는 단정하게 결을 맺으셨다는 결(/archive/moim/1998-imsi-chongdae, /archive/moim/2dae-ryu-mokgi-chuim).

김해길 초대 회장은 같은 해에 종료하시며, 21년을 다음 분께 단정하게 넘기셨다는 결(/archive/moim/1998-kim-haegil-jongryo). 회보 2호 발간 또한 같은 해에 마무리되어, 1대 회장기이 한 매듭으로 단정하게 닫힌 자리.

편집실의 정리

이 글이 영가회에 남기는 자리:

  • **〈영가상록회 → 영가회〉 **. 1977년 3월 26일 〈영가상록회(永嘉常綠會)〉라는 이름으로 시작해 후일 〈영가회(永嘉會)〉로 개칭된 가장 첫 자리. 김해길 1대 회장의 자리한 모습.

  • 창립 멤버 61명. 1977년 3월 26일 18:00 덕수빌딩 지하1층 연회장에 모이신 61명이 — 영가회의 가장 첫 자리.

  • 21년 결의 단단한 자리. 화려한 행사 없이, 자기 자리에서 〈얼굴을 보고 이름을 부르고 자리에 빠지지 않는〉 결로 21년을 지키신 결. 그 결이 영가회 2~7대 회장기의 가장 단단한 받침이 된 자리.

(※ 본문의 일부 한자·인명·문구 등 OCR 인식이 불완전한 자리는 회의록·책자 원본 보완 시 다시 다듬어 두겠습니다.)

출처: 《영가회 40년사》 27~29쪽 (제2편 〈역대회장의 약사〉 — 제1대 김해길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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