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대 김계동(金啓東) 회장 — 2017~현재

20여 년 영가회의 산 증인 — 총무·사무국장·상임부회장·감사·상임부회장을 두루 거치신 〈영가맨〉

2026年 05月 11日글 · 편집실

편집실 안내 — 이 글은 《영가회 40년사》 제2편 〈역대회장의 약사〉 — 제7대 김계동 회장(책 285323쪽, PDF 08) 의 첫 자리(285286쪽) 을 편집실이 한 호흡으로 정리한 자리입니다. 김 회장은 — 1대 김해길 회장기부터 영가회 사무국장·총무로 시작해 6대 김봉구 회장기까지 상임부회장으로 회의 받쳐 오신 〈20여 년 영가회의 산 증인〉 으로, 6대 회장의 부득이한 일신상 사유로 임시총회에서 차기 회장으로 만장일치 선임되신 결입니다.

신임회장에 김계동 상임부회장

"영가회(회장 김봉구)는 2017년 5월 26일(금) 프레지던트호텔에서 임시총회를 열고, 김봉구 회장의 부득이한 일신상 이유로 회장직무를 계속할 수 없어, 김계동 상임부회장을 만장일치로 차기회장으로 선임하였다."

김계동 신임회장은 — 영가회 총무·사무국장·상임부회장·감사를 두루 맡으면서 남다른 열정과 노력, 그리고 빈틈없는 청확한 업무능력과 자료정리 등 영가회의 산 증인이며, 20여년을 영가회와 함께 살아온 〈영가맨〉이업기에 마치막 단계의 회장으로 선임되었다는 결.

김계동 회장 취임사 — 〈마음의 고픈 시대〉

"존경하는 영가회원님께"

일년 중 가장 무더운 삼복중입니다. 그간 회원님 가내 두루 강녕하시온지 문안 드립니다는 결.

여러 가지로 모자라고 부족한 제가 영가회장이라고 하는 중책을 맡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이 자리가 저에게는 영광스럽지만보다는 — 마음이 긴장되고 격정이 앞을 가려 어색가 무엽습니다는 결. 그러나 처음 일고 만장일치로 추대해주신 회원님들께 고게 숙여 감사드리며, 있는 힘을 다해 정성과 노력을 바치겠습니다는 결.

"오늘날 우리들의 생활은 많이 편리해졌고, 경제적으로 엄청 풍요로 위겠으나, 인심은 더욱 메말라졌고 살이 잡은 더 한박해졌습니다. 베고픈 시대도 지나갔으나 마음의 고픈 시대가 왔습니다."

도덕이 무너지고, 한국정신문화의 정신을 잃어버렸지만 — 우리 안동인들은 한국정신문화의 수도인 안동에서 태어남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안동인으로서 옛 선인들의 정신적인 중요로움을 이어가야겠습니다는 결.

세 가지 우선순위

"존경하는 영가회원 여러분! 저는 우선 아래 세 가지 일에 우선순위를 두었습니다."

친목단체로 성장하기 위한 회원의 결

"우리 영가회의 목적 사업인 회원 간에 서로 이해하고 존중하며 배려하는 가운데 인정을 나누는 친목단체로 성장하기 위해 모든 회원의 뜻과 마음을 모으겠습니다."

젊은 산업회원 영입, 입회비 30만원 → 20만원

"젊고 참신한 산업회원을 영입하여 새로운 활력이 넘치는 모임으로 성장발전 시키게 합니다. 그렇게 하기위해 — 입회비를 30만원에서 낮춰 20만원으로 하겠습니다."

한국정신문화 수도인 답게

"한국정신문화 수도인 답게, 먼저 우리자신을 성찰하고 새로운 회망과 비전을 창출하는 성숙한 사회를 만들어 나가는데 정성을 다하겠습니다."

한 회원의 다짐

이러한 일들은 — 저 혼자의 힘으로는 들론 불가능합니다는 결. 그러나 지혜롭고 현명하신 우리 회원님들이 한마음으로 동봉 풍진다면 반드시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는 결.

"다시 한 번 어렵답는 지도와 편달을 기다리며, 거듭 감사의 인사를 옵니다."

더운 날씨에 회원님들 건강에 각별히 유의하시고, 가내 행복이 충만…

회의 가장 긴 시간을 지키신 결

김 회장은 영가회의 거의 모든 자리를 두루 거치신 분.

  • 사무국장으로 회의 살림을 직접 챙기시던 시기
  • 상임부회장으로 회를 옆자리에서 받치시던 시기
  • 감사로 회의 자금·운용을 점검하시던 시기
  • 그리고 회장으로 회를 직접 이끄시는 지금까지

회원들 사이에서 김 회장을 "영가회의 산 증인" 이라 부르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는 결. 1대 김해길 회장(/archive/saram/1dae-kim-haegil) 초창기부터 — 류종묵 5대 회장(/archive/saram/5dae-ryu-jongmuk)·김봉구 6대 회장(/archive/saram/6dae-kim-bonggu) 의 시기를 지나, 지금의 회까지 — 김 회장은 차근차근를 빠짐없이 함께해 오신 분.

영가회 40년사 편찬의 결

7대 회장기의 가장 큰 자취는 — 《영가회 40년사》 편찬. 김 회장은 직접 40년사 편찬위원장을 맡으셨고, 회의 사십 년을 한 권에 정리하는 큰 결을 이끄셨다는 결.

이 작업은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었다는 결. 1977년부터 지금까지 — 사십 년의 정기 모임 회의록을 한 줄 한 줄 다시 읽으셨고, 회원 댁의 앨범을 일일이 찾아다니시며 사진을 모아 오셨고, 흩어져 있던 회보 기고문과 회칙 변경 기록을 한자리에 정리해 두신 결.

차차 4대~6대 회장기를 지나 7대로

김 회장이 사무국장으로 자리하셨던 회장기를 정리하면:

  • 3대 금창태 회장기(2003~2006)총무간사 (/archive/saram/3dae-geum-changtae)
  • 4대 허동진 회장기(2007~2010)사무국장 (/archive/saram/4dae-heo-dongjin)
  • 5대 류종묵 회장기(2011~2014) — 사무국장 → 상임부회장 (/archive/saram/5dae-ryu-jongmuk)
  • 6대 김봉구 회장기(2015~2016)상임부회장 (/archive/saram/6dae-kim-bonggu)
  • 7대 김계동 회장기(2017~현재)회장

다섯 회장기 약 15년 동안 회를 한 결도 거르지 않고 받쳐 주신 결.

편집실의 정리

이 글이 영가회에 남기는 자리:

  • **〈영가맨〉 **. 1대 김해길 회장기부터 7대까지 — 약 20여년 영가회의 한 자리를 함께해 오신 한 분이 마치막 단계의 회장으로 선임되신 결. 그 결이 영가회의 가장 단단한 받침.

  • 〈마음의 고픈 시대에 한국정신문화의 수도로서 안동인을 잇겠다〉 는 결. 7대 회장기 첫 가장 단정한 문제 의식. 베고픈 시대도 지나갔으나 마음의 고픈 시대가 왔다는 한 호흡.

  • 젊은 산업회원 영입을 위한 입회비 30만원 → 20만원 인하 결정. 회를 다음 세대로 자연스럽게 잇기 위한 구체적 결정. 한 회장이 회를 뿐만 이어가는 것이 아니라 — 구체적 규정의 받쳐 두는 자리.

(※ 본문의 일부 한자·인명·문구 등 OCR 인식이 불완전한 자리는 회의록·책자 원본 보완 시 다시 다듬어 두겠습니다.)

출처: 《영가회 40년사》 285~286쪽 (제2편 〈역대회장의 약사〉 — 제7대 김계동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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