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 안내 — 이 글은 안동독립운동기념관장(추정) 김희곤(金喜坤) 회원을 — 영가회의 결과 만나는 자리에 한 호흡으로 정리한 자리입니다. 김 회원께서 《영가회 40년사》 제3편 회원 기고문 자리에 직접 기고하신 글 〈안동독립운동의 특성〉(책 413쪽~) 의 결과 짝이 되는 사람 챕터의 자리.
안동독립운동기념관의 결
김희곤(金喜坤) 회원은 — 안동독립운동기념관을 오래 지켜 오신 분(공식 직책은 안동독립운동기념관장으로 추정).
안동독립운동기념관은 — 2007년 8월 10일 개관 이래 — 청소년 보호콜프·여수체험콜프 등 — 29,136명의 교육수업생을 배출했고, 방문객도 — 77,410명에 이르고 있으며, 특히 보훈청에서 전국 36개의 보훈시설을 대상으로 기념한 운영 실태와 활성도 등 4개 분야에 — 종합 2위에 옷받다는 결(/archive/hyang/andong-seonbi-jeongsin).
이 기념관은 — 임하면 1907년의 협동학교(1907년 설립 경북소학 최초 근대식중등교육기관) 자리에 국가기록을 받아 건립되었다는 결.
〈안동, 한국 독립운동의 발상지〉 의 결
"안동은 우리나라 독립운동 발상지(1894년 안동의병)로 독립운동의 최초 역사로 기록되었다."
상해 임시정부 국무령인 — 석주 이상룡 선생, 국민회의 의장인 일송 김동삼 선생 등 출중한 독립운동가 뽑아 나라들은 — 326명의 독립유공자(대구 141명, 서울 293명) 가 나왔다는 결.
이 밖에도 — 미포상 독립운동가 698명이나 된다는 결.
"다른 지역과 비교해 볼 때, 정말 자랑스러운 일이다."
김희곤 회원의 직접 기고문 〈안동독립운동의 특성〉
김 회원께서 《영가회 40년사》 제3편 회원 기고문 자리에 직접 기고하신 글 — 〈안동독립운동의 특성〉(책 413쪽~) 은 — 안동이 한국 독립운동의 결에서 어떤 자리를 차지하는가를 차분히 정리하신 자리.
기고문이 다룬 결의 구조:
- **유림(儒林)**이 의병으로 옮겨가는 자리
- 만주·연해주의 망명으로 이어지는 안동 출신 독립운동가들의 결
- 3.1 운동에서 안동이 차지한 자리
- 광복 이후의 결까지
이 모든 결을 — 한 편의 글에 압축적으로 풀어 두신 자리는, 영가회 글 챕터을 한 단계 묵직하게 올려 둔 한 자리.
김 회원의 한 말씀
회원께서 옮겨 적어 두신 김희곤 회원의 한 말씀:
"안동의 독립운동가들은 자기을 자랑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기록하는 자리에 우리가 더 정성을 들여야 합니다."
이 한 마디가 — 김 회원을 가장 잘 보여 주는 자리. 안동독립운동기념관장의 결과 한 사학자이 한 회원의 만나는 풍경.
영가회와 안동독립운동기념관의 결
영가회는 한 해 한 해 — 안동독립운동기념관과을 작게나마 이어 오고 있다는 결.
- 회비의 한 부분이 정기 후원으로 흐르는 결
- 회원 자제분의 안동 답방 자리에 기념관 방문이 빠짐없이 포함되어 있는 결 (4대 허동진 회장기 〈안동 답방의 결〉 의 자리 —
/archive/saram/4dae-heo-dongjin) - 영가회 회원로 한 회원이 기념관의 활동을 자주 알려 두는 결
이 모든 자리에 — 김희곤 회원이 직간접적으로 닿아 있다는 결.
임낙윤 회원의 글과 한 호흡으로 호응
김 회원의 결은 — 임낙윤 회원의 〈역사를 바꾼, 안동의 향기〉(/archive/geul/geul-andong-hyanggi·/archive/hyang/andong-im-nak-yun-sison) 와 한 호흡으로 호응합니다.
임 회원이 짚으신 안동선비정신의 핵심 — 〈청빈·지조·예의〉 — 이, 김 회원이 짚으신 〈1894년 안동의병·326명 독립유공자〉 의 결과 한 호흡으로 자리하는 풍경.
"탐관오리들이 백성들의 고혈로 재산을 축척할 때 — 안동 사람들은 나라와 백성을 위해 눈물겨도록 청빈했으며, 옳다고 믿는 생각을 목숨과도 바꾸지 않았고, 언제나 자신을 낮추고 양보하는 미덕을 몸소 실천했다." — 임낙윤
이런 안동선비정신이 — 역사적 고비마다 나라를 구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임 회원을, 김 회원의 안동독립운동기념관이 가장 단단하게 받쳐 주는 풍경.
편집실의 정리
이 글이 영가회에 남기는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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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한국 독립운동의 발상지〉 의 한 자리. 1894년 안동의병 발상부터 326명의 독립유공자 배출까지 — 한 회원로 정리된 안동 독립운동의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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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의 독립운동가들은 자기 결을 자랑한 적이 없으므로 기록하는 자리에 우리가 더 정성을 들여야 한다〉 는 결. 한 사학자·기념관장의 가장 깊은 한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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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낙윤 회원의 〈청빈·지조·예의〉 의 결과 한 호흡으로 자리한 결. 안동선비정신이 — 임낙윤의 산문과 김희곤의 사학으로 두 자리에서 받쳐 주는 풍경.
(※ 김희곤 회원의 안동독립운동기념관장 직책의 정확한 시기·기념관 운영 자료의 상세 결은 — 공식 자료가 확인되는 대로 정성껏 보강해 두겠습니다.)
출처: 《영가회 40년사》 413쪽~ (제3편 회원 기고문 — 김희곤 〈안동독립운동의 특성〉) + 사람 챕터 약전 정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