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7년 미국 유학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 이상두 안중 2년 선배의 권유로 영가회에 처음 입회한 김원(金 원) 회원. 전 서울시립대학교 부총장. 한국전쟁 직후 안동고등의 초창기 시절 만난 두 은사 권상철·김석헌 선생을 한 글에 단정하게 갈무리한 학자의 자리.
1977 창립부터 1998 임시총회까지 — 1대 회장기 평년 정기총회을 한 자리에 묶어 두는 자리입니다.
1977.3.26 영가회의 회칙이 처음 정해진 자리입니다.
1977.3.25 영가회 창립총회 — 인사동 남강에서 회의 첫 자리가 마련되었습니다.
초창기 영가회 — 인사동 남강 다실에서 시작된 짧은 결의 기억입니다.
1977년 미국 유학 후 한국에 돌아와 이상두 선배의 권유로 영가회에 처음 입회한 호흡으로부터 — 한국전쟁 직후 안동고등 시절 만난 두 은사(권상철·김석헌)와 함께한 결과 워즈워스의 시 〈초원의 빛〉이 한 글에 어우러진 학자의 회고문.
1977년 3월 26일 덕수빌딩 지하1층에서 열린 영가상록회 창립총회에서부터, 1998년 10월 23일 자리를 류목기 2대 회장에게 넘기실 때까지 — 21년 동안 영가회의 첫 자리를 지키신 김해길 초대 회장의 평전. 《영가회 40년사》 제2편 〈역대회장의 약사〉 (책 27~29쪽) 자료 직접 정리.
1976년 9월 5일부터 1977년 2월 18일까지 — 네 차례의 준비 모임을 거쳐 영가회가 잉태·출산된 결을 가장 가까이서 보신 한 회원의 직접 증언. 회의 이름이 "영가회"로 결정되기까지의 자리도 함께.
1976년 12월 10일 3차 준비 모임에서 6가지 이름 후보(영장·영조회·정인친우회·안동친우회·영가향우회·상록회) 중 〈영가회〉가 만장으로 결정된 결로부터, 창립 시 〈永嘉常綠會〉을 거쳐 후일 〈永嘉會〉로 개칭된 결까지 — 영가회 이름을 한 호흡으로 정리한 자리.
1977년 3월 26일 창립총회에서 류혁인 회원이 회칙을 설명하고 원안대로 통과된 결로부터 — 1983년 1차, 1998년 2차, 2009년 3차, 2011년 4차·5차 개정까지 — 34년 다섯 차례을 거치며 다듬어진 영가회 회칙을 정리한 자리.
1977년 3월 25일 인사동 남강(南崗) 다실에 모인 일곱 분의 결 — 그리고 다음 날 3월 26일 18:00 종로구 견지동 덕수빌딩 지하1층 연회장에서 열린 영가상록회 창립총회(61명 참석) . 영가회의 가장 첫 자리의 두 호흡을 한 글에 정리한 자리.
《영가회 40년사》를 한 호 한 호 풀어 가는 〈영가회 40년〉 시리즈 첫 회. 1977년 류혁인(작고·전 청와대 정무수석)·장원석 등 40대 출향인 10여 명이 '고향을 위해 기여할 모임을 만들자'는 취지로 영가상록회를 결성한 자리. 김영일 영가회 감사가 한 호에 한 결로 풀어 두신 첫 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