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계헌(金啓憲) — 정림회 멤버·영가회 초기 후원의 결

1980년대 초 영가회 시민회관 커피숍 자리의 받쳐 주신 분

2026年 05月 11日글 · 편집실

편집실 안내 — 이 글은 류종묵 5대 회장의 회고문 〈안동모임에서 만났던 사람들〉(/archive/geul/geul-andong-saramdeul, 책 363쪽) 에 자리한 김계헌(金啓憲) 선배 을 편집실이 한 호흡으로 정리한 자리입니다.

류종묵 5대 회장의 회고에서

류종묵 5대 회장의 회고문 〈안동모임에서 만났던 사람들〉(/archive/geul/geul-andong-saramdeul) 의 한 자리에 단정하게 자리한 모습:

"80년도 어느 날 정림 멤버이신 김계헌(金啓憲) 선배의 입회권유에 따라 시민회관 커피숍에 들어서니, 초로의 영가니 풍구, 어눌한 안씨, 아주 친절해 보이는 얼굴에 일은 옷음으로 후배의 입회를 기다리던 그 분이 후일에 알게 된 김계헌 선배였다."

1980년대 초 영가회 초창기의 자리. 시민회관 커피숍에서 류종묵 회원(후일 5대 회장) 의 입회를 안내해 주신 분.

〈정림회〉 멤버의 결

김계헌 선배는 — 정림회 의 멤버. 정림회는 — 안동인 회원들로 구성된 또 다른 모임의 한 자리(영가회 외 다른 자리의 결).

류종묵 5대 회장의 회고문에서 짚으신 자리는 — 정림회와 영가회가 한 안동인로 자연스럽게 자리한 풍경. 김계헌 선배가 — 두 자리를 잇는 결의 가운데에 자리하신 분이라는 풍경.

정인고예서 향수를 가르치신 결

"나중에 알고 보니 정인고예서 우리 동남배들에게 향수를 가르쳤다."

김계헌 선배는 — 정인고(또는 정인고예) 에서 동남배들에게 — 향수(즉 향토 교양·고향의 결) 를 가르치신 분.

학교의 한 자리에서 — 후배들에게 안동의 결·향토을 단정하게 전해 두신 결. 그 자리가 — 후일 류종묵 5대 회장을 영가회로 안내해 주시는 자리로 자연스럽게 이어진 풍경.

프레스센터 19층의 결

류 회장의 회고문이 이어집니다:

"그 다음 단 프레스센터 19층에서 가산성 같은 선배님들의 입회신청을 받고 카페일 마티의 살매김과 양주에 취하고 김밥으로 거우 배를 채웠던 그 밤이 따뜻해 생각난다."

— 1980년대 영가회 초창기. 신입 회원의 입회를 함께 받으며 한 자리에 모인 결의 가장 따뜻한 한 시간. 그 자리에 김계헌 선배가 함께한 결.

안동인을 잇는 한 다리

김계헌 선배의 결은 — 두 자리(정림회·영가회) 를 잇는 다리의 자리.

서울에서 자리한 안동인들에게는 — 여러 모임이 자연스럽게 자리한 풍경:

  • 영가회(永嘉會) — 1977년 창립 (/archive/yeongi/1977-changrip-namgang)
  • 안동향우회(鄕友會) — 권상철 교장이 회장으로 받쳐 오신 결
  • 재경동창회 — 김해길 1대 회장 한 자리
  • 정림회 — 김계헌 선배의 결
  • 향우회장학재단(鄕友奬學財團)
  • 상악회(上岳會) — 1986년 창립
  • 박약회(博約會) — 이용태 회원의 결 (/archive/saram/myungsa-lee-yongtae)

여섯·일곱 결의 모임이 안동을 한 안동인의 받쳐 주신 풍경. 김계헌 선배는 그 결정적인 한 자리에 자리하신 분.

편집실의 정리

이 글이 영가회에 남기는 자리:

  • 〈정림회와 영가회를 잇는 결〉의 자리. 안동인이 여러 모임의 자리에 자연스럽게 자리한 풍경의 가운데에 자리하신 분.

  • 〈정인고에서 향수를 가르치신 결〉. 학교의 한 자리에서 후배들에게 안동의 단정하게 전해 두신 결.

  • 〈류종묵 5대 회장을 영가회로 안내해 주신 자리〉. 후일 영가회의 가장 풍성한 5대 회장기의 받쳐 주신 류 회장의 가장 첫 자리에, 김계헌 선배가 자리한 풍경.

(※ 김계헌 선배의 상세 약력 및 정림회의 활동 결은 — 회원 자료가 확인되는 대로 정성껏 보강해 두겠습니다.)

출처: 류종묵 5대 회장 회고문 〈안동모임에서 만났던 사람들〉(/archive/geul/geul-andong-saramdeul, 책 36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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