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가회의 〈첫 자리〉를 만든 한 사람
영가회는 1977년 3월 김해길 초대회장의 자리에서 공식 출범했지만, 그 5년 전인 1972년 4월부터 이미 한 사람의 자리에서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강민창(姜民昌) — 당시 청와대 비서실에 파견 근무하던 시절, 매월 1회 오찬을 겸한 〈永嘉회담〉의 연락간사를 맡아 안동 출신 정부 비서관·차관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자리를 만들어 온 분.
영가회의 가장 첫 자취를 직접 만든 사람.
자리
| 항목 | 내용 |
|---|---|
| 한자 | 姜民昌 |
| 자리 | 전 치안본부장 |
| 단체 | 재경안동향우회 제8대 회장 |
| 영가회의 자리 | 1972 〈永嘉회담〉 연락간사 → 영가회의 첫 자취 |
1972년의 〈永嘉회담〉 — 영가회의 첫 자취
강민창 회원이 청와대 비서실에 파견 근무하던 시절, 안동 출신 정부 비서관·차관들이 매월 한자리에 모이는 자리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강 회원이 연락간사 역할.
자리에 함께한 분들:
- 재무차관
- 상공차관
- 재정 주관
- 주택건축 관
- (주)풍산금속 류찬우 사장
- 청와대 비서관
- 중앙정보 상무
약 10명 안팎이 매월 오찬을 겸해 고향 안동 소식을 나누던 자리. 이 자리가 5년 동안 이어진 끝에, 1977년 3월 김해길 초대회장의 자리로 정식 발족한 영가회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본회의 약력은 단지 1977년 창립으로만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 5년 전인 1972년 4월, 청와대 비서실에 파견 근무하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 강민창 회원, 《영가회 40년사》 327쪽
치안본부장의 자리
강민창은 한국 치안의 한 자리에 오른 인물. 전 치안본부장 — 경찰 행정의 가장 큰 자리. 한 시대의 치안을 어깨에 메었던 한 사람의 자취.
영가회의 회원들 가운데서도 정부 행정의 깊은 자리에 있던 한 분.
재경안동향우회 제8대 회장
영가회 외에도, 강민창 회원은 재경안동향우회 제8대 회장으로 자리한 인물. 안동 출신 재경 인사들의 가장 큰 단체의 회장.
영가회와 재경안동향우회 — 두 자리를 모두 깊이 아는 어른의 자취. 1972년 〈永嘉회담〉이 두 자리의 한 뿌리였다는 사실을 직접 증언할 수 있는 자리.
80세의 회고 — 후배 회원들에게
《영가회 40년사》 327~328쪽에 직접 기고하신 글에서, 강 회원은 80세에 들어선 자리에서 영가회 40년사에 남기고 싶은 두 가지를 짚었습니다.
- 영가회의 첫 자취 — 1972년 〈永嘉회담〉
- 노년의 십계명(十誡命) — 후배 회원들에게 전하는 자리
"세월의 강물이 유유히 흐르는 사이 어느덧 80세에 들어섰다. 이번 기회에 미력하나마 영가회의 사(史)를 간략히 남기고, 회의 목적 달성에 관해 한 가지 제언을 드리고자 한다."
영가회의 〈깊은 뿌리〉
5대 류종묵 회장기·6대 김봉구 회장기·7대 김계동 회장기를 거치며 영가회는 매년 새로운 자취를 더했지만, 그 모든 자취의 가장 깊은 뿌리에는 1972년 강민창 회원이 만든 한 자리가 있습니다.
영가회의 자취가 1977년에 시작된 것이 아니라, 1972년 한 비서관의 책상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 — 한 모임의 자리가 얼마나 정성스레 다져진 것인지 다시 새삼.
회원 한 분의 자리가 곧 한 회의 자취였던 풍경.
연관 자리
- 永嘉會 40年史에 남기고 싶은 말 — 강민창 회원의 직접 기고문
출처: 《영가회 40년사》 제3편 〈회원 작품〉 327~328쪽 (강민창 회원 직접 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