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2009 — 영가문화상 제1~6회 시상이 한 호도 거르지 않고 이어진 시기의 영가회 사진을 모아 두는 자리입니다.
2000~2003 — 2대 류목기 회장기에서 3대 금창태 회장기로 결이 옮겨가던 영가회의 모습을 사진으로 모아 두는 자리입니다.
2006년 1월 9일 저녁 6시 30분, 영가회 신년하례회 자리에서 영가문화상 제1회 시상식이 마련됐습니다. 첫 수상자는 안동문화지킴이 ― 1999년 6월 창립 이래 안동의 문화재와 문화 가꾸기에 앞장선 회원 655명의 단체.
2005년 1월 13일 저녁 6시 30분, 영가회는 프레지던트호텔 19층에서 신년하례회와 정기총회를 함께 가졌습니다. 안동대학교 김희곤 교수가 '안동독립운동의 특성과 기념방안'을 주제로 특강을 했습니다.
2006년 5월 15일, 영가회는 처음으로 1박 2일 장거리 문화유적탐방에 나섰습니다. 하동 차 문화 ― 화개장터, 하동 차 시음회관, 야생차 체험. 지리산 자락에서 시작된 우리나라 차 문화의 자취를 찾아갔습니다.
2005년 6월 18일, 영가회는 제3차 문화유적탐방으로 풍기·영주·문경 일원을 돌았습니다. 강보영 안동병원 이사장이 버스와 점심을 후원. 순흥 소수서원·선비촌, 안동병원 13층 점심, 그리고 문경 태조왕건 세트장까지.
2004년 9월 8일, 프레지던트 호텔에서 영가회는 4·15 총선에서 안동시 17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권오을 의원의 축하 만찬을 마련했습니다. 15·16·17대 연이은 3선 ― 안동에서 드문 영광. 김동기 고려대 명예교수의 특강이 자리를 더했습니다.
2004년 6월 12일, 영가회 회원 60여 명이 관광버스 두 대에 나누어 타고 영월로 떠났습니다. 김삿갓 유적지, 난고 문학관, 그리고 동강 어라연에서의 송어회 ― 류종묵 부회장이 전액을 부담한 첫 본격 문화유적탐방.
2003~2006, 금창태 3대 회장기 — 정기총회·문화유적탐방·영가문화상 1~3회·명사초청·축하연·이사회 등 평년 결을 한 자리에 묶어 두는 자리입니다.
2006 금창태 3대 회장의 4년 임기를 마무리한 자리입니다.
2003 금창태 3대 회장의 취임식 — 영가문화상 제정의 결을 함께 다진 자리입니다.
2003.4.15 영가회 회원 네 분의 새 자리 취임을 한 자리에서 함께 축하한 결의 자리입니다.
마스터 발행계획에 〈이재범 — 서울산업대 총장 당선〉(2003.4.15 4명 축하연) 으로 자리 잡힌 자리입니다만, 《영가회 40년사》 PDF 원문(책 107쪽) 확인 결과 같은 시기 같은 자리의 〈서울산업대 총장〉은 〈이희범(李熙範)〉(/archive/saram/myungsa-lee-huibeom)으로 확인됩니다. 〈이재범〉이라는 별도 회원이 회보·회의록에서 확인되는 대로 정성껏 다시 작성하겠습니다.
권령건 안동대학교 총장은 2003년 봄에 안동대 총장으로 영전하신 자리. 영남대와 고려대 대학원 거쳐 모교에서 박사 과정을 마치고 1983년 안동대 행정과 교수로 부임, 이후 2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고향에서 후학의 길을 걸어오신 — 이른바 〈선비의 대표적인 표상이다〉 라는 결의 평전. 《영가회 40년사》 3대 회장기 약사(책 108쪽) 자료 직접 정리.
전 서울시립대학교 부총장으로 한 시기를 통과하시고, 2003년 봄에 장관급 중앙도시계획위원장에 오르신 김원(金 원) 회원의 평전. 같은 분이 《영가회 40년사》 회원 기고문 〈내가 만난 은사 두 분〉(345~347쪽) 의 저자이기도 한 자리.
안동농학교를 졸업한 뒤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다 뒤늦은 결심으로 24살에 행정고시 3등으로 합격하신 결로부터, 2003년 봄 통계청장에서 재정경제부 차관으로 영전하신 자리까지 — 영가회 회원 김광림(金光琳) 차관의 평전. 《영가회 40년사》 3대 회장기 약사(책 107쪽) 자료 직접 정리.
2003년 1월 15일 소피텔앰배서더 호텔 신년하례식과 함께 취임해 2006년 12월 31일까지 4년을 이끄신 3대 금창태 회장의 평전. 영가회를 〈단순한 친목단체가 아닌 안동의 전통문화를 시대의 변화에 맞추어 계승·발전시키는 야망 문화단체〉로 승화시키며 — 〈영가문화상(永嘉文化賞)〉을 제정하신 결의 주인공.
3대 류혁인, 4대 김남식 회장 시기 회원 100명 돌파와 영가문화지 창간
의무감에서 습관으로, 마침내 감사함으로 내게 된 회비에 담긴 40년의 의미
2003년 1월 15일 소피텔앰배서더 호텔에서 열린 3대 금창태 회장 취임식(85명 참석) 자리에서 — "회는 모이는 자리만으로는 부족하다, 회가 무엇을 기억해 둘 것인지를 결정해 두어야 다음 세대가 회를 이어 갈 수 있다" 는 결로 제정된 영가문화상. 2004년 제1회부터 2014년 제11회까지 한 호도 거르지 않고 이어진 결.
1977년 창립부터 지금까지 — 영가회가 〈우리는 왜 모이는가?〉 라는 물음에 답해 온 45년. 향우회를 넘어 안동의 문화·정신·역사·인물을 함께 기억하고 다음 세대에 전하는 자리로 옮겨 온 결의 자취. 모임의 친목·회보·문화상·40년사·안동 답방·박약회 후원이 한 자기 답으로 자리한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