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 안동9개 고등학교 동창회가 한자리에 모이는 친선체육대회. 안동중·안동고·경안고·경덕여고·경덕고·경일고·중앙고·풍산고·안동영남여고 등 안동 출신 9개 학교가 매년 한자리에 모인 자리. 영가회 회원들이 자취를 함께한 한 한 매듭, 그리고 한국 정신문화의 수도 안동의 인적 자취가 한자리에 모이는 풍경.
1972년 청와대 비서실 파견 근무 시절, 매월 1회 오찬을 겸한 〈永嘉회담〉의 연락간사를 맡아 영가회의 가장 첫 시발을 만든 강민창(姜民昌) 회원. 재경안동향우회 제8대 회장과 전 치안본부장의 자리를 거치고, 80세에 들어선 자리에서 영가회 40년사에 남기고 싶은 말을 직접 기고한 한 어른.
1999년 5월 31일, 류목기 2대 회장이 수유리 그린파크호텔에서 열린 재경안동향우회 제10회 정기총회에 참석했습니다. 강민창 회장이 이끄는 안동 출신 큰 향우회 모임의 한복판으로 영가회가 발걸음을 옮긴 자리.
2003년 1월 15일 소피텔앰배서더 호텔 신년하례식과 함께 취임해 2006년 12월 31일까지 4년을 이끄신 3대 금창태 회장의 평전. 영가회를 〈단순한 친목단체가 아닌 안동의 전통문화를 시대의 변화에 맞추어 계승·발전시키는 야망 문화단체〉로 승화시키며 — 〈영가문화상(永嘉文化賞)〉을 제정하신 결의 주인공.
1998년 10월 24일 세명대학교 임시총회에서 84명 참석 가운데 신숨된 2대 류목기 회장의 평전. 안동시 임동면 박곡리 출신, 〈클린 맨(Clean Man)〉으로 불린 풍산금속 500% 명품가의 후손. 안동사범학교·서울대 사범대학·고려병원 행정부원장·㈜만술 상호저축은행장 등을 두루 거치신 결.
1972년 청와대 비서실 시절의 〈永嘉회담〉에서 시작된 영가회 창립 비화와, 80세에 들어선 한 회원이 후배 회원들에게 전하는 노년의 十誡命 — 두 결을 한 자리에 담은 회원 기고문.
재경안동향우회 2023년 송년회가 한 호의 자리에서 1000여 명이 한 자리에 한 결로 모인 가장 큰 자리. 8-5호 송년의 밤·8-7호 향우회 3억 약정·8-8호 명예로운 안동인상 자취 위에서 한 호 더 단단해진 결.
정재석 재경안동향우회 회장이 한 호의 자리에서 한 결의 큰 글을 풀어 두었다. '한국 정신문화의 수도' 안동의 한 결의 자취 위에서 재경안동향우회가 어떻게 한 호 더 큰 결로 함께 자리잡을지를 풀어 둔 결.
재경안동향우회가 한 호의 자리에서 〈송년의 밤〉 행사를 성황리에 개최했다. 영가회의 한 결의 자매 모임이자 1989년 영가회가 태동을 도운 모임 — 한 결로 짜인 자취 위에서 한 호 더 단단한 결의 만남.
재경 예천군민회와 안동향우회가 한 자리에 한 결로 만난 지난 여름날의 한 호의 추억. 곽지원 재경 예천군민회 회장이 한 결의 자취를 한 호의 자리에 단정하게 풀어 둔 글. 안동·예천 행정통합의 한 결과 한 호로 호응하는 출향인사 모임의 한 자취.
2022년 7월 1일 출범한 제9대 안동시의회 의장단 선출·원 구성을 마친 한 호의 자취, 그리고 재경안동향우회 체육대회에서 일직면이 우승한 한 결의 단신 2제. 안동·재경 안동인의 두 결이 한 호에 모인 자리.
《영가회 40년사》를 한 호 한 호 풀어 가는 〈영가회 40년〉 시리즈 첫 회. 1977년 류혁인(작고·전 청와대 정무수석)·장원석 등 40대 출향인 10여 명이 '고향을 위해 기여할 모임을 만들자'는 취지로 영가상록회를 결성한 자리. 김영일 영가회 감사가 한 호에 한 결로 풀어 두신 첫 회.
권영세 안동시장이 《영가회보》 재발간을 맞아 보낸 축하 메시지. 2011년 이후 10년간 발간이 중단됐던 영가회보가 다시 발행되는 자리를 축하하며 — 1977년 김해길 초대회장과 출향인사 10여 분이 시작한 영가상록회, 그 뒤 영가회로 이름을 바꾼 자취, 재경안동향우회 태동의 촉매제로서의 영가회까지 — 안동시장이 직접 짚어 둔 한 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