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 — 전 서울시립대학교 부총장

1977년 미국 유학 후, 영가회 입회 첫 자리의 한 학자

2026年 10月 17日글 · 편집실

1977년의 한 자리

김원(金 원) — 1977년 미국 유학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온 직후, 영가회에 처음 입회한 회원 가운데 한 분. 전 서울시립대학교 부총장.

항목 내용
한자 金原 (또는 元 — 영가회 자료 기준)
자리 전 서울시립대학교 부총장
학자 자취 한국전쟁 직후 안동고등 (초창기)
영가회의 자리 1977년 미국 귀국 직후 이상두 안중 2년 선배의 권유로 입회

미국 유학을 마치고 — 1977년의 영가회

1977년, 김원 회원이 미국 유학을 마치고 서울시립대학교에 잠시 근무하던 시절. 안동의 재사 이상두(안중 2년 선배) 형이 김 회원의 연구실에 찾아와 영가회 모임을 권한 자리.

"당시 서울시립대학교에 잠시 근무하다, 자(작)은한 안동의 재사 이상두(안중 2년 선배) 형이 내 연구실에 찾아와 〈영가회(永嘉會) 모임이 있으니 가자〉는 것이다."

미국에서 공부를 마치고 한국에 온 지 2년밖에 되지 않아 매사가 조심스럽던 때, 마침 그곳 고향 모임에 나가면 다 알고 지내는 친구들을 만날 수 있다는 이교수의 말이 싫지 않았다는 회고.

"가서 보니 정말 그랬다."

— 김원 회원, 《영가회 40년사》 345쪽

영가회 초기, 40대 후반의 자리

해방되고 6년째 안동중학·안동농림·안동사범에 다니던 내노라하던 재사들이 모인 영가회 — 작은 고향의 중학교 동창회 같았던 자리.

전후 어려웠던 시절에 서울로 와 20여 년간 사회생활에 충실하다 보니 서로 만나질 못했는데, 이때는 모두가 40대 후반쯤. 앞을 돌아보고 뒤를 돌아보게 된 나이.

"그렇게 함께 모여 보면 만감의 어울임이 없고 곧 시작짹적인 안동들날 같았다. 오랫만에 고향에 온 듯해 편안했다."

영가회의 자취를 가까이서 본 자리

김원 회원은 영가회 초기에 영가회지(永嘉會誌) 발간 때 권회실 총무를 도와 일도 있고, 모임의 진행도 가까이서 본 분.

"이 모임의 취지가 정치색을 매혜(配除)하고 순 친목 모임으로 출발을 했기에 — 그렇게 잡음 한마디 없이 화이애애하게 이어 갈 수 있었던 것 같다."

영가회가 한 세기를 지내도록 잘 이어 갈 수 있었던 비결을 — 안동 사림의 후예라는 자리와 정치색을 배제한 순 친목의 자리, 두 가지에서 짚은 회고.

〈내가 만난 은사 두 분〉

김원 회원이 《영가회 40년사》(345~347쪽)에 직접 기고한 글의 큰 자리는 두 분의 은사를 회고하는 자리.

  • 권상철 선생
  • 김석헌 선생

한국전쟁 직후 안동고등 초창기 시절, 김 회원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두 스승. 학자의 자취가 늘 한 스승에게서 시작된다는 한 자리.

워즈워스의 〈초원의 빛〉

회고문의 한 매듭에는 **윌리엄 워즈워스(William Wordsworth, 1770~1850)**의 시 《초원의 빛(Splendor in the Grass)》이 함께 자리합니다.

영국 시인의 한 자취가, 안동 출신 학자의 회고에서 한 자리에 어우러진 풍경. 영가회 회원의 글이 단지 회고로 그치지 않고 한 학자의 깊은 자취를 풀어 보이는 자리.

학자이자 영가회의 자취

서울시립대학교 부총장의 자리에서, 그리고 영가회의 초기 회원의 자리에서 — 김원 회원은 한국 사회와 한 고향 모임의 두 자리를 모두 정성스레 다져 온 분.

영가회의 한 회원이 곧 한 학자의 자취이기도 한 풍경.

연관 자리

출처: 《영가회 40년사》 제3편 〈회원 작품〉 345~347쪽 (김원 회원 직접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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