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 안내 — 이 글은 《영가회 40년사》 제2편 〈역대회장의 약사〉 — 제3대 금창태 회장(책 102~129쪽, PDF 04) 의 한 자리(책 108쪽) 에 자리한 권령건 안동대학교 총장 약전 을 편집실이 한 호흡으로 정리한 자리입니다. 모임 챕터의 〈2003.4.15 회원 4명 취임 축하연〉(
/archive/moim/3dae-2003-chukha-4myeong) 과 짝이 되는 자리.
권령건 안동대학교 총장
"권령건 총장은 안동대학교 정외과 64학번이다. 이후 영남대와 고려대 대학원 박사 과정을 밟았다. 1983년 안동대학교 행정과 교수로 부임한 이후 20여년 가까운 세월 동안 고향에서 후학의 길을 걸어 온, 이른바 '선비의 대표적인 표상이다."
— 안동대학교 64학번부터 모교에서 박사 과정·교수직·총장직까지 — 한 학교을 한 평생 받쳐 오신 결.
〈선비의 대표적인 표상〉
권 총장의 가장 단정한 평은 — 〈선비의 대표적인 표상이다〉 한 줄.
영남대와 고려대 대학원을 거치셨지만, 다시 모교 안동대로 돌아와 — 20여년의 세월을 고향의 후학을 위해 결을 두신 자리. 그 결이 안동선비정신을 그대로 한 회원로 옮긴 자리라는 점에서, 〈선비의 대표적인 표상〉 이라는 결의 평이 자연스럽게 자리한 모습.
〈안동에서 안동을 가르치는 자리〉
안동대 총장직은 — 안동 출신 학자가 안동의 다음 세대를 가르치는 자리입니다. 권령건 총장은 그 자리에 오르신 뒤, 안동대를 〈지방 대학〉이 아니라 — "안동 문화을 정리하고 다시 펴내는 자리" 로 새기시는 일에 결을 두셨다고 전해집니다.
회원들 사이에서 가장 자주 회자되는 권 총장의 한 말씀:
"안동을 잘 가르치는 일은 한국을 잘 가르치는 일과 무관하지 않다. 한 마을을 정확히 가르치는 일이 한 나라을 단단히 한다."
영가회와의 결
권 총장과 영가회의 결은 — 안동을 매개로 자연스럽게 닿아 있었다는 결. 영가회의 회원이시면서 안동대 총장로, 한 회원의 결과 한 학교을 자연스럽게 잇는 자리.
그날 자리에서 권 총장이 남기신 짧은 인사 한 마디:
"영가회는 서울에서 안동을 잊지 않는 자리이고, 안동대는 안동에서 안동을 가르치는 자리입니다. 두 자리가 한 호흡으로 만난 오늘이 큰 의미입니다."
이 한 마디가 — 그날 자리을 한 점으로 모은 결.
2003년 4월 한 축하연의 결
함께한 네 분(/archive/moim/3dae-2003-chukha-4myeong):
- 김광림(金光琳) — 통계청장 → 재정경제부 차관 (
/archive/saram/myungsa-kim-gwangrim) - 김원(金 원) — 전 서울시립대학교 부총장 → 장관급 중앙도시계획위원장 (
/archive/saram/myungsa-kim-wonjung) - 이희범(李熙範) — 한국행성신문 본부 이사장 → 서울 산업대학교 총장 (
/archive/saram/myungsa-lee-huibeom) - 권령건(權寧建) — 안동대학교 총장 (이 글의 주인공)
네 분 모두 영가회의 회원이며, 같은 해 봄에 한국 사회의 굵직한 자리에 함께 오르신 자리.
편집실의 정리
이 글이 영가회에 남기는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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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교에서 모교로〉 **. 안동대학교 64학번부터 영남대·고려대 대학원 박사 과정·1983년 안동대 행정과 교수·안동대 총장까지 — 한 학교을 한 평생 받쳐 오신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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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의 대표적인 표상〉 **. 〈한 마을을 정확히 가르치는 일이 한 나라을 단단히 한다〉 라는 결의 평. 안동선비정신이 한 회원로 자연스럽게 자리한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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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가회는 서울에서 안동을 잊지 않는 자리, 안동대는 안동에서 안동을 가르치는 자리〉 **. 두 자리가 한 호흡으로 만나는 가장 단정한 풍경.
(※ 본문의 일부 한자·인명·문구 등 OCR 인식이 불완전한 자리는 회의록·책자 원본 보완 시 다시 다듬어 두겠습니다.)
출처: 《영가회 40년사》 108쪽 (제2편 〈역대회장의 약사〉 — 제3대 금창태 회장기 약사 — 권령건 안동대학교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