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1.13 신년하례회·정기총회 — 김희곤 교수의 안동독립운동사 특강

프레지던트호텔에서, 안동독립운동의 일곱 가지 특성

2026年 07月 03日글 · 편집실

새해의 큰 자리

2005년 1월 13일 저녁 6시 30분, 프레지던트호텔 19층에서 영가회(회장 금창태)는 신년하례회와 정기총회를 함께 가졌습니다.

류목기 회장기 후반(2001)부터 영가회 신년하례회는 새해의 큰 자리로 자리잡았습니다. 금창태 3대 회장기에 들어서도 그 모습이 그대로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김희곤 교수 특강 — 안동독립운동의 특성

이날의 특강 강사는 김희곤(金喜坤) 안동대학교 인문대학 사회학과 교수. 경북대학교 사학과에서 한국근대사·한국독립운동사를 전공한 문학박사. 안동대 안동문화연구소장, 안동대 박물관장, 안동독립운동기념관장 등을 역임한 분.

주제는 "안동독립운동의 특성과 기념방안". 김 교수는 안동인의 항일 투쟁이 한국독립운동사 전체에서 갖는 의미를 일곱 가지로 풀어냈습니다.

1. 안동은 한국독립운동의 발상지

한국독립운동의 서막은 의병항쟁이고, 그것은 갑오의병으로 나타났습니다. 1894년 갑오의병의 첫 걸음을 안동에서 내디뎠다는 점.

2. 혁신유림이 중심

의병항쟁 실패 이후 대부분의 유림은 처사를 자처하고 은둔했지만, 안동 유림들은 자기 반성과 자각을 통해 새롭게 거듭나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이들이 국내외 진보적·통일 지향적 활동을 펼친 혁신유림.

3. 전국 최다 독립유공자 배출

시·군 단위는 대개 30여 명을 배출하는데, 안동은 2004년 현재 265명. 도 단위 수치에 맞먹는 규모. 본적을 옮긴 분까지 합하면 300명을 웃돌 것으로 추정.

4. 순국 자정자 최다

국권 상실 시기에 약 60여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데, 그중 10명이 안동인. 충절의 정신적 좌표가 된 분들.

5. 사회주의운동에도 안동인 중심

1920·30년대 사회주의운동에서도 안동인들이 중심에 있었습니다. 기득권을 포기하고 소작인회를 지주가 직접 나서 만든 사례를 남긴 곳.

6. 지역과 시기를 불문한 참여

사상적 갈등과 나이를 따지지 않고 오직 독립이라는 공동 목표를 위해 모든 분야에서 최선을 다한 것이 안동인.

7. 퇴계학 맥과 통혼의 연결망

씨줄(퇴계학 맥)과 날줄(통혼)로 촘촘히 엮인 그물 같은 연결망이 독립운동을 끝까지 밀고 나간 에너지원.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자취

"요즈음 널리 이야기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를 실천에 옮긴 대표적인 곳이 안동이요, 안동문화권의 특징이 바로 거기에 있다." — 김희곤 교수 강연 中

지식인이자 지배층이 역사적 책무를 지고 나간 전형적 모범. 종가가 훼손되는 고통 속에서도 진행한 의병, 기득권 포기하고 떠난 만주 독립군 기지 건설, 소작인을 위해 지주가 앞장선 양반 종가 출신 청년들의 활동 — 모두 "가지고 배운 자가 역사적 의무를 다하려고 힘을 쏟은" 특성.

이날 특강은 안동 출신 영가회원들의 자긍심을 깊이 흔든 자리였습니다.

출처: 《영가회 40년사》 119~1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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