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 안내 — 이 글은 영가회가 45년을 통해 답해 온 — 〈우리는 왜 모이는가?〉 라는 물음을 한 호흡으로 정리한 자리입니다. 영가회 회원 한 분 한 분이 한 평생 마음에 안고 살아가는 결이 한 회의 정체성으로 자리한 풍경. 〈안동은?〉(
/archive/hyang/andong-iran)·〈안동선비의 시대적 역할〉(/archive/hyang/andong-seonbi-jeongsin)·〈영가회와 안동 — 향의 의미〉(/archive/hyang/yeongga-hyang-uimi) 와 한 호흡으로 호응.
〈영가〉라는 이름이 답을 미리 주고 있다
영가회의 이름을 풀면 — 답이 나온다는 결.
영가(永嘉) 는 — 안동의 옛 이름(/archive/yeongi/ireum-byeoncheon). 고려 시대부터 불리던 그 이름을 회의 이름으로 택한 것은 — 단순한 낭만이 아니었다는 결. 이 모임이 무엇을 중심에 두고 싶은지를 — 처음부터 분명히 밝힌 것.
서울에서 살아가는 안동 출신들의 모임은 수십 년 전부터 있었다는 결. 그런데 — 왜 영가회는 그 많은 향우회들과 달리 지금도 이야기되는가?
정체성의 한 물음
향우회는 보통 두 가지 중 하나를 중심에 둔다는 결 —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거나, 인맥이거나.
영가회도 그렇게 시작했다는 결. 1977년 창립 당시, 서울로 올라온 안동 사람들은 — 낯선 도시에서 서로를 찾았다는 결. 익숙한 말씨·익숙한 이름들이 반가웠다는 결.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영가회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우리는 왜 모이는가?"
그 물음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이 — 영가회의 45년 역사.
자기 답의 자취들
단순히 친목을 다지는 자리에서 — 안동의 문화와 정신을 함께 기억하고 전하는 자리로 조금씩 변해온 결.
자기 답의 자취들:
| 자리 | 시기 | 의미 |
|---|---|---|
| 영가문화 제1집 《그단새 다섯 해》 | 1982 | 〈친목 모임을 넘어 기록하는 모임〉의 첫 선언 (/archive/yeongi/yeongga-munhwa-1jip) |
| 영가문화 제2집 《그단새 스무해》 | 1998 | 1대 회장기의 단정하게 매듭짓는 자리 (/archive/yeongi/yeongga-munhwa-2jip) |
| 영가문화상(永嘉文化賞) 제정 | 2003 | 〈친목을 넘어 안동을 기억하는 모임〉으로의 전환 (/archive/yeongi/yeongga-munhwasang-sijak) |
| 안동 답방의 정기화 | 2007~ | 4대 허동진 회장의 결 — 〈회원 자제분들이 안동을 한 번이라도 다녀가는 자리〉(/archive/saram/4dae-heo-dongjin) |
| 박약회 인성교육사업 후원 | 5대~7대 | 안동선비정신을 다음 세대로 잇는 자리 (/archive/saram/myungsa-lee-yongtae) |
| 《영가회 40년사》 편찬 | 7대 김계동 회장기 | 사십 년을 한 권에 매듭짓는 자리 (/archive/saram/7dae-kim-gyedong) |
— 이 모든 자리가 — 〈우리는 왜 모이는가?〉 에 대한 영가회의 자기 답의 자취.
안동이라는 특수성
안동은 — 여느 고향과 다른 결.
- 유교 문화의 본고장 — 추로지향(鄕魯之鄕) 의 한국판(
/archive/hyang/yeongga-hyang-uimi) - 독립운동의 산실 — 1894년 안동의병 발상부터 326명 독립유공자 배출(
/archive/saram/myungsa-kim-huigon) - 하회탈춤과 같은 살아있는 무형유산 —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
/archive/hyang/andong-seonbi-jeongsin) - 한국정신문화의 수도 — 노무현 정부 시기 자리매김된 결
이 땅에는 — 단순한 지역감정을 넘어서는 무언가가 있다는 결.
영가회 회원들은 — 그 특수성을 알고 있었다는 결. 그래서 회의 행사에 안동의 선비 정신을 담으려 했고, 회지의 이름을 《영가문화》로 지었으며, 문화상의 수상 대상을 — 안동의 전통 계승자로 정한 결.
〈영가의 얼〉 — 안동시민 헌장의 결
안동시민 헌장(/archive/hyang/andong-heonjang) 의 전문에 단정하게 자리한 한 결:
"우리는 문화의 전통을 가진 안동시민임을 자랑한다. … 그 얼이 우리에게 永嘉(영가) 의 얼임을 자랑으로 여기며 …"
영가회가 — 단지 한 회원 모임의 명칭이 아니라 — 안동 시민 한 분 한 분이 한 평생 마음에 안고 살아가는 한 자리 임을 말해 주는 결.
회의 이름과 시민 헌장이 — 한 호흡으로 만나는 풍경.
세대 교체와 정체성
창립 세대가 물러나고 — 2세·3세가 회의 중심이 되면서 정체성 문제는 더욱 예민해진 결.
안동에서 태어나지 않은 회원들에게 — 영가회는 무엇인가?
이에 대한 답은 — 아직 완성되지 않은 결.
그러나 분명한 것은 — 영가회가 이 물음을 회피하지 않았다는 점.
7대 김계동 회장(/archive/saram/7dae-kim-gyedong) 의 취임 한 결:
"젊고 참신한 산업회원을 영입하여 새로운 활력이 넘치는 모임으로 성장발전 시키게 합니다. 그렇게 하기위해 — 입회비를 30만원에서 낮춰 20만원으로 하겠습니다."
세대가 바뀌어도 — 회지가 발행되고·문화상이 이어지고·40년사가 만들어진 결. 그 행위 하나하나가 — 〈우리는 단순한 친목 모임이 아니다〉라는 선언.
안동은 지금도 거기 있다
서울 어딘가의 회의실에 모인 영가회 회원들. 그들이 나누는 이야기 속에 — 안동은 언제나 현재형으로 존재한다는 결.
- 누군가의 부모님이 아직 거기 살고
- 누군가의 어린 시절 기억이 거기 있으며
- 누군가의 조상이 거기 잠들어 있다는 결
그 연결이 끊어지지 않는 한 — 영가회 안에 안동은 살아 있다.
편집실의 정리
이 글이 영가회에 남기는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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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모이는가?〉 라는 물음의 45년. 1977년 창립부터 영가회가 한 호도 잊지 않은 자기 물음. 그 물음에 대한 답을 — 친목·회보·문화상·40년사·안동 답방·박약회 후원으로 만들어 온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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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가의 얼〉 **. 안동시민 헌장에 자리한 한 자리가 — 영가회 회원의 결과 한 호흡으로 만나는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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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 교체에도 한 답을 이어가는 결. 2세·3세 회원이 회의 중심이 되어도 회지·문화상·40년사·안동 답방이 한 호도 거르지 않은 결.
출처: 《영가회 40년사》 전체 — 총편 + 제2편 〈역대회장의 약사〉 + 제3편 회원 작품 + 제4편 〈안동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