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에 들어서기 전 한 자리
1977년 3월 25일. 서울 인사동의 한 다실(茶室) 남강(南崗) 에 일곱 분이 둘러앉으셨습니다. 그 자리는 "한 번씩이라도 얼굴을 보고 가자"는 짧은 권유에서 시작된 자리였습니다. 그날의 자리가 곧 영가회의 창립총회가 되었습니다.
일곱 분의 결
남강에 모이신 일곱 분은 다음과 같습니다(가나다순).
- 김해길(金海吉) — 초대 회장으로 추대됨
- 류혁인(柳赫仁)
- 장원석(張原碩)
- 이상두(李相斗)
(나머지 분들의 성함은 회의록 보완 자리에서 확정해 두겠습니다.)
서울 한복판에서 안동의 결을 한 결로 모은 첫 자리 — 그 자리에 함께해 주신 분들의 이름이 영가회의 결을 가장 단단히 받치고 있는 자리에 있습니다.
회의 이름을 "영가(永嘉)" 로
회의 이름은 그 자리에서 "영가회(永嘉會)" 로 합의되었습니다. 영가(永嘉) — "영원토록 아름답다"는 안동의 옛 이름. 회의 결의 뿌리가 어디에 있는가를 한 단어로 분명하게 보여 주는 결정이었습니다.
회의 형식을 정하다
같은 자리에서 회의 결의 큰 틀이 함께 정해졌습니다.
- 정기 모임 — 한 해 두 차례(봄·가을)
- 신년하례회 — 새해 첫 모임
- 회비 — 회원의 자발에 기댄 결
- 회장 — 김해길 초대 회장 추대
거창한 선언문도, 화려한 행사도 없었습니다. 그저 한 자리에 둘러앉아 약속을 짓고, 다음 자리를 함께 정한 결 — 그것이 영가회 창립총회의 결입니다.
자료
이 자리의 사진과 회의록은 갤러리 메뉴의 1970s 모음 자리에 차차 갈무리해 두겠습니다. 회원께서 보관 중인 자료를 보내 주시면 평전의 빈자리가 더 풍부히 채워질 수 있습니다.
출처: 《영가회 40년사》 26~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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