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창기 회원 모임의 기억 — 인사동 남강 시기

인사동 남강, 1977~1980

2026年 05月 15日글 · 편집실

다실 한 자리에서 시작된 회

영가회의 첫 자리는 일곱 분이 둘러앉을 수 있는 작은 다실이었습니다. 인사동의 한 골목, 남강(南崗) 이라는 이름의 다실 — 그 자리가 영가회의 결의 첫 자리였습니다.

다실의 결

1977년부터 1980년 무렵까지 영가회의 모임은 거의 모두 남강에서 마련되었습니다. 차 한 잔의 결, 한 자리에 둘러앉아 안동의 결을 천천히 나누는 결 — 그 결이 영가회의 가장 첫 결의 모양이었습니다.

회원 수가 일곱 분에서 열 분, 다시 열다섯 분으로 늘어가면서도 자리는 그대로 남강에서 이어졌습니다. 다실의 한 자리에 한 분 한 분이 좁게 앉아도 — 그 결이 더 가깝게 결을 모아 주었습니다.

"다실의 결을 잊지 않겠다"

회원들 사이에서 자주 회자된 한 말씀이 있습니다.

"회가 커져도 다실의 결을 잊으면 안 됩니다. 일곱 사람이 다실 한 자리에 둘러앉던 그 결이 회의 가장 첫 결입니다."

이 결은 회가 다른 자리로 옮겨 간 뒤에도 — 덕수빌딩, 호텔, 한정식 — 늘 회의 자리 한 결의 뒤에 함께 자리해 왔습니다.

다음 자리로

1980년 무렵부터 영가회의 자리는 회원 장원석 회원의 결로 자리 잡은 덕수빌딩 사무실로 옮겨 갑니다. 다실 한 자리에는 더 이상 회원 모두가 함께 자리하기 어려운 결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남강의 결은 그대로 영가회의 결에 남아 있습니다. 첫 자리의 결을 잊지 않는 결 — 그것이 영가회 사십 년의 결의 가장 단단한 받침입니다.

자료

남강의 옛 자리에 대한 사진이나 회원의 기억은 갤러리 메뉴의 1970s 모음 자리에 차차 갈무리해 두겠습니다.

출처: 《영가회 40년사》 [쪽 보완]

이 글이 도움이 되셨다면 공유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