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의 맛 ① 안동국시 — 삶의 애환 어린 정겨운 고향의 맛

이유대 (영가회 사무총장) · 영가회보 8-1호 (2022년 겨울호)

2022年 01月 15日글 · 이유대

편집실 안내 — 《영가회보》 8-1호(2022년 겨울호) 11면 〈안동의 맛〉 시리즈 첫 회. 영가회 이유대 사무총장이 직접 풀어 두신 한 자리. 안동의 음식이 한 호의 결로 잇히기 시작한 자리.

시리즈 머리말

안동에는 맛이 있다. 간고등어, 안동국시, 식혜, 헛제삿밥 등등. 안동 사람이면 다 아는 특별한 음식이다. 안동 추녀밑에 겨우내 달아놓은 시래기로 만든 구수한 된장국, 달콤한 무 말랭이로 만든 무침, 어머니의 손맛. 그 맛을 찾아 가본다.

"안동 사람이면 누구나 삶의 애환이 서린 음식"

자장면, 안동 사람이면 누구나 정겨우면서도 삶의 애환이 서린 음식이라고 생각하는 게 국수도 아닌 안동국시이다.

선친께서 군 훈련기간에 보리쌀과 고구마를 너무 질리게 먹어서 한평생 고구마를 드시지 않으셨다. 그 대신 어머니께서 해주시는 국시를 즐겨 드셨다.

어머니의 손맛 — 안반에 펴고 홍두깨로 밀어

해질 녘, 어머니는 콩가루와 밀가루를 적당히 버무려 반죽을 널찍한 안반에다 얹고 홍두깨로 밀고 나서 칼로 썬다. 거기에다 감자와 호박 등 야채가 들어간 물에다 넣어 국시를 바가지로 펴서 그릇에 담아 저녁상에 올리셨다.

국수가 어머니의 안동국시가 되는 시점은 이때쯤이라고 할까. 우리는 양념장을 적당히 곁들여 후룩후룩 불어가며 정겨운 이야기까지 담아 먹었다. 칼로 자르고 남은 자투리는 잿불 아궁이에다 구워 먹는 재미는 있었다. 그러나 너무 자주 주식으로 먹어서인지 그때는 솔직히 국시 맛을 제대로 모르고 자랐다.

안동에는 토질과 배수가 콩 재배 하기에 적당해 예나 지금이나 품질 좋은 콩이 많이 나온다. 좋은 콩가루가 국시 맛을 더 좋게 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안동국시는 대체로 건진국시와 칼국시로 구분된다.

건진국시 — 접빈객·봉제사의 특별 음식

건진국시는 안동 양반가의 접빈객(接賓客)·봉제사(奉祭祀) 상에 올리는 최고로 치는 안동지역 반가(班家)의 특별 음식이었다.

꿩고기·닭고기·사골·멸치·다시마·은어 등 계절별로 다양한 음식 소재로 장국을 만들고 여기에 직접 손으로 빚은 국수를 넣어 끓인 다음에 고명을 얹어 손님께 대접하곤 했다.

칼국시 — 상시 주식의 깔끔한 맛

칼국시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국수 종류로, 상시 주식이었다. 칼국시는 특별한 재료를 넣기보다 맹물에 끓인 국수다. 감자·배추·계란·무 등 채소류를 넣고 끓여 먹었다. 깔끔한 맛이 일품이었다.

1980년대 서울 — 경동시장의 한 자리

서울에는 1980년대에 동대문 경동시장에서 선을 보여 자리 잡았던 것으로 보인다.

과천에 거주할 당시 과천 2단지 상가에서 안동 점촌이 고향이라는 할머니가 딸과 함께 콩가루로 만드는 안동국시집을 즐겨 찾았다. 인기가 많았다. 어느 해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식당을 의왕 백운호수 쪽으로 이전하였다 하여 찾아가니 안동국시에 콩가루 대신 사골 육수에 밀가루 국수를 팔고 있었다. 서울 사람들과 젊은이들이 찰기 없어 잘 끊어지는 게 특징인 안동국시보다 사골국수를 좋아해서 어쩔 수 없었다고 한다.

물론 그동안 요리법에 변화를 준 안동국시집도 있다. 그러나 콩가루로 맛을 내면서 전통의 맛을 지켜 나가는 안동국시 식당이 전국 각지에 번성해 가고 있고, 그 맛을 찾아가는 식도락가들이 많아 안동국시의 맥을 잇는 데 어려움이 없는 것 같다는 생각에 안도한다.

〈내가 꼽는 안동국시 맛집 5곳〉

  • 〈일미식당〉 — 서울 동대문구 경동시장 (지하 1층)
  • 〈안동국시〉 — 안동시 정상동
  • 〈국시마을〉 — 안동시 풍천면
  • 〈영손이 손국수〉 — 안동시 강변마을 (동부교회 옆)
  • 〈선미식당〉 — 안동시 중구동, 부영 부동산 옆
  • 〈안동 참마손국수 종가〉 — 안동시 신안동 (퇴계로 141)

— 이유대 / 영가회 사무총장

박스 한 자리 — '범처럼 용맹하게' 임인년

2022년은 범의 해, **임인년(壬寅年)**이다.

60간지 중 39번째로 임(壬)이 흑색, 인(寅)이 호랑이를 의미하는 검은 호랑이의 해이다. 호랑이는 12지(支) 중 세 번째 동물이다.

호랑이는 무엇보다 강한 힘의 상징이면서 우리에게는 산중의 군자라고 하여 산군·산령으로도 불리는 신앙의 대상이 되어 왔다. 오죽했으면 단군신화에서부터 호랑이가 등장한다. 한반도 모양이 기개에 찬 호랑이를 닮았으며, 1988년 서울올림픽 때는 호돌이 마스코트가 대한민국을 전 세계에 알리기도 했다.

재미있게도 우리 민족에게 인식되어 있는 또 다른 호랑이의 이미지는 우리의 생활 속에 친숙한 동물이었다. 사악한 잡귀를 물리치는 영물이기도 하다. 용맹스럽고 정의를 지키는 영물이기도 하며 떡 하나 주면 안 잡아 먹는 전래동화 속의 친숙한 동물이기도 하다. 목에 걸린 가시를 꺼내주자 은혜를 갚은 호랑이 등 호랑이는 우리와 아주 가까운 존재였다.

2021년에도 코로나19 등 여러 가지로 힘든 한 해를 보냈다. 힘들었던 모든 이야기는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 속으로 사라지길 바라며 올 한 해는 범이 내려와 날 선 기개로 코로나19를 몰아냈으면 하는 바람이다. 더구나 대통령 선거, 지자체장 선거가 있는 해이다. 국민 모두가 우렁차게 포효하며 일어서길 소망해 본다.

박스 한 자리 — 안동사투리경연대회 대상

2021년 12월 10일 안동시민회관 낙동홀에서 열린 제1회 안동 사투리 경연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한 권영숙 외 3인이 참가한 〈좋은날 오께시더〉의 대사 일부를 게재한다.

"보시더~ 사돈 아이껴~ 자아 그래시더? 어 고달 있니더? 신가이 매라이 없니더~ 억수로 반가우이더~ 지가요 빨래 쪼매 하니라고 그러이더. 배차 꼬라지가 올찮아 걸검티 만든고는 없고, 꼬치까리 쪼매 낭군거 치대가 농갈라 주니 라끄 심이 쪼매 들어가 그런 것터이더. 참말로 사돈 뭐 타고 왔니껴?"

"지는요, 장터가 모래이 돌만 질은 좀 소집아도 개작다 보이 걸어 왔니더."

"그래시껴? 올 장날 고치를 한 푸대 이고 왔디마는 고치값이 폭낙이시더…"

가게주인: "자~ 억수로 싱싱하이더. 요고요 맛도 기똥차니데이~ 간고디 하고 쪼구 좀 사가소~ 장베기 하로 오소~"

박스 한 자리 — 안동(安東)의 옛 지명 영가에서 유래

안동을 **추로지향(鄒魯之鄕)**이라고 불렀다. 추로지향은 공자(孔子)의 고향인 노나라와 맹자(孟子)의 고향인 추나라를 뜻한다. 예절을 알고 학문이 왕성한 지역을 일컬을 때 쓰는 용어로, 조선조 정조가 퇴계 이황의 치적을 말할 때 그의 고향 안동을 지칭할 때 주로 사용한다. 안동을 추로지향이라고 불렀다.

안동의 옛 지명 영가(永嘉)에서 유래됐다. 김휘동 전 안동시장은 본인 블로그에서 '영(永)' 자는 파자(破字)를 하면 이수(二水)가 되고, 강원 태백 황지에서 발원한 낙동강의 본류가 되는 곳이 안동이다. 즉 두 개의 물줄기(水)가 만나 아름다움(嘉)을 이루어 역사와 문화의 꽃을 피워나가는 상서로운 의미와 함께 천하의 길지라는 의미를 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안동(安東)은 안어대동(安於大東)이라는 말에서 안(安)과 동(東)자를 따서 유래됐다. 동쪽의 복된 땅 고려를 안전하게 한 고을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서기 930년 고려 태조 왕건과 후백제 견훤이 안동 일대에서 전쟁이 한창일 때 안동 지역의 삼태사(김선평·권행·장길)가 왕건을 도와 크게 공을 세웠다. 왕건은 이에 대한 치하로 당시 고창군(古昌郡)을 안동부(安東府)로 승격시켰다.

편집실의 정리

이 한 호의 〈안동의 맛 ①〉이 영가회에 남기는 자리:

  • 이유대 사무총장이 직접 풀어 두신 한 호의 어머니의 손맛 — 콩가루·홍두깨·안반의 한 자리
  • 건진국시(접빈객·봉제사)·칼국시(상시 주식) — 두 결의 안동국시
  • 사무총장이 꼽은 안동국시 맛집 5곳 — 출향인사 회원께 한 호의 안내장
  • 임인년·안동사투리경연대회·안동 지명의 한자 자취 — 한 호에 모인 안동의 결

영가회보의 〈안동의 맛〉 한 호의 첫 자리.

출처: 《영가회보》 8-1호 (2022년 겨울호) 11면 〈안동의 맛 ① 안동국시 — 이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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