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 안내 — 이 글은 권기성(權笆成) 회원께서 《영가회 40년사》(366~367쪽) 에 직접 기고하신 글을 편집실이 한 호흡으로 정리한 자리입니다. 권 회원은 새명대 국제교수·재단이사 을 이어 오신 분으로, 2016년 한여름 중국 산동성 태안·곡부·추성을 방문하시고 — 추로지향(郡魯之鄕) 의 본향에서 공자와 맹자을 마주한 답방을 한 글에 단정하게 정리해 두신 자리입니다. 김민연 회원의 〈2008년 해외문화유적탐방〉(
/archive/geul/geul-2008-haeoe-tambang) 과 자매가 되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추로지향(郡魯之鄕) 의 본향이란
"흔히들 영남의 安東 지방을 '추로지향(郡魯之鄕)' 이라고 부른다."
이 명칭은 — 중국의 명현 孔子가 태어난 魯나라와 孟子가 태어난 鄒나라를 일컫는데로, 지금의 山東 지방을 두고 말하는 결.
명색이 안동 출신인 필자가 — 추로지향의 본향을 가 보지 않고는 도저히 자존심이 허락되지 않아, 오랫동안 벼르고 별러왔던 이곳을 드디어 들르게 되었다는 결.
그렇게도 답던 2016년 한 여름에 중국의 산동성 泰安 지방을 방문하게 되었다는 결.
138세 周太山 사당의 결
가는 길에 — 138세까지 살았다는 周太山 사당에 들렀다는 결. 이 사당에 그를 興祀로 한 49개의 鎭氏가 파생된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는 결.
우리나라 13대 대통령 盧泰愚도 여길 방문한 바 있다는 결.
권 회원이 새명대 국제교육원장으로 있을 당시 이 곳 泰안山 교육장의 초대로 이곳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으나, 여의지 않고 이제야 그 뜻을 이루게 되었다는 결.
공자의 고향 曲阜의 결
우선 공자의 고향인 曲야에 들렀다는 결.
"그는 여기서 태어나 30대에 학문을 가르치기 시작했고, 50대에는 노나라의 정승으로 관리의 기강을 바로잡아 가면서 국력을 부장 시키기도 했다."
만년에 그는 — 시·서·역·예·악·춘추를 재편하여, 후진들의 전통문화를 계승하고 새로운 문학을 창출하는데 힘썼다는 결.
70세에 이르러 마음이 닿는 대로 좋아도 道를 넘어서지 않는다 (七十而從心所欲, 不踰矩) 했다는 결.
"더욱 그는 — '禮가 아니면 보지 말고, 禮가 아니면 듣지 말며, 禮가 아니면 말하지 말고, 禮가 아니면 나가지 말라' 면서 그의 언행록을 통해 그의 사상을 전파시키는 등 — 철저한 禮의 실천을 주장해 왔다."
다음 우리는 — 공자(BC551~BC479) 의 묘가 있는 孔林으로 향해서 공자의 묘소에서 国拜를 올리고 예를 갖추었다는 결. 공림에는 공자의 아들을 비롯한 자손들의 묘소가 약 2만기가 있다고 한다는 결.
맹자의 고향 鄒城의 결
다음으로 우리 일행은 — 孟子(BC372~BC289) 의 고향인 鄒城으로 떠났다는 결.
시원한 도로를 달려 불과 20분만에 도착했다는 결. 그는 — 공자의 사상을 이어 발전시킨 유학자로서, 공자가 죽은 뒤 100여년 된 태어나서 제자들을 학문과 호언자기를 가르쳤다는 결.
"그는 유학자에게 대 사상가로서 공자의 정인에 버금가는 정인이라는 의미로 亞聖이라고 했다."
일찍이 아버지를 어이고 홀로인 어머니의 — 三遼之敎·斷機之敎 로 대 사상가가 되어, 인의에게의 힘이 발현된다는 仁義說 을 주장하기도 했다는 결.
"이렇게 유교는 맹자에 의해서 도덕학으로 확립되고 정치윤으로서 정비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 후 유교의 정통 사상으로서 계승되어 偉敎를 孔孟之敎 라고 불렀다."
태산(泰山, 1,545m) 의 결
다음 코스의 중국의 — 5천년 역사가 머무는 대륙의 魂, 泰山(1,545m) 에 올랐다는 결.
"이 태산은 조선 중기의 양시인의 시조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아래 메이로다' … 로 비교되지 않는 산 (五嶽獨意) 으로, 기가 세고 영험한 산이다."
예로부터 중국의 황제들이 정상에 올라 천묘로 흠모를 가지고 그 군림을 하지로 유명하고, 또한 중국의 관광객 연간 19명 이상이 등을(中國人) 최대의 관광지이기도 하다는 결.
우리나라 대통령들도 — 큰 꿈을 이루기 위해 이 태산을 올랐다고 한다는 결. 받기는 충정도 지난해에 우산을 올렸다는 결.
한국 안동, 추로지향의 한국판
이 태안 지방에 버금가는 우리나라 영남 지방, 특히 安東은 — 오랫동안 선비 정신을 간직하며 많은 영현들을 매출 시킨다는 결.
특히 시원이 — 도산서원·영남서원·소수서원을 중심으로 한 철학적 학문적 문화를 펼한 시었다는 결. 퇴계의 사상과 사학·학봉·농압·동춘 등을 중심으로 하는 정신 문화에서 오는 행적이 더욱 폭격을 높이고 있다는 결.
퇴계 선생(李退, 1501~1570) 의 主理論과 偉敎七情論의 사상이 이를 뒷받침한다는 결.
글의 마지막 — 한 안동인의 다짐
"이렇게 우리는 추로지향의 본고장인 중국의 태안 지방과 한국의 안동 지방을 보면서, 모두 다 이 渭을 다시 중요함을 추가 길려한다 가까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아울러 — 우리 안동인으로서, 이 古林地를 잘 계승 발전 시켜야 할 것을 다짐했다는 결.
— 終 —
편집실의 정리
이 글이 영가회에 남기는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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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로지향(郡魯之鄕)〉 이라는 호칭의 정확한 의미. 흔히 안동을 추로지향이라 부르지만, 그 본향이 — 중국 산동성의 노나라(공자)·추나라(맹자) 라는 사실을 권 회원께서 한 호흡으로 짚어 두신 자리. 안동이 그 한국판이라는 결의 깊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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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한여름의 자비 답방. 영가회의 정기 탐방이 아닌, 한 회원 개인로 — 새명대 국제교육원장 시절부터 벼르신 답방을 마침내 이루신 자리. 안동인의 자존심이 추로지향의 본향까지 가닿는 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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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연 회원의 〈2008년 해외문화유적탐방〉(
/archive/geul/geul-2008-haeoe-tambang) 과의 자매 자리. 김 회원은 2008년 영가회 공식 탐방으로, 권 회원은 2016년 개인 답방으로 — 같은 곡부·태산을 마주한 두 결이 영가회의 글 챕터에 단정하게 자리하는 풍경.
(※ 본문의 일부 한자·인명·문구 등 OCR 인식이 불완전한 자리는 회의록·책자 원본 보완 시 다시 다듬어 두겠습니다.)
출처: 《영가회 40년사》 366~367쪽 (회원 기고 — 권기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