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기회의 자리
2013년 10월 17일, 프레지던트호텔 31층 모차르트홀에서 영가회 하반기 분기회가 마련됐습니다. 이날의 특강 강사는 김용직(金容稷)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주제는 〈동북아시아의 문화전통과 한국현대시〉.
안동 출신의 국문학 거장이 영가회원들 앞에서 한국 현대시의 정신적 뿌리를 풀어낸 한 자리.
강사 약력
- 경북 안동 출생
- 서울대학교 국문과 졸업, 동 대학원 석·박사
- 1968년부터 30년간 서울대학교에서 후학을 가르침
- 대한민국학술원 회원
- 한국문학번역원 이사장
- 한국현대문학회 · 한국비교문학회 · 한국시학회 회장 역임
-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1961년 자유문학에 〈우리 현대시에 나타나는 두 양상에 대하여〉를 발표하며 등단한 뒤 평론활동을 통해 한국 현대시를 체계적으로 연구하는 데 힘써 온 인물.
수상 — 현대문학상(1977) · 세종문화상(1978) · 대한민국문학상(1992) · 삼일문화상(1997) · 만해대상 학술부문
주요 저서 — 《한국현대시 연구》(1974) · 《현대시원론》(1988) · 《임화문학연구》(1991) · 《한국근대시》 1·2권 · 《한국현대시가》 상·하권 외
1. 이식문화론의 파고를 넘어서
강의의 첫 화두는 한국 현대문학 연구의 방법론적 자기성찰이었습니다.
"우리 세대가 문과대학에 입학했을 때 문학 연구는 서구 근대 문예비평 이론의 강한 영향권 속에 있었습니다. 특히 한국 현대문학을 이해·평가하기 위해서는 서구 근대 문예비평만이 통용 화폐 가치가 되는 양 생각되었습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김 교수의 세대는 암중모색의 상태에서 문학 연구의 새로운 길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초입에서 주목한 것이 절대주의 분석비평 — 신비평의 방법.
2. 이육사의 〈광야〉 — 내재론과 그 이상의 것
신비평이 시와 문학의 자족론인 줄로 알았던 시기. 그러나 공부가 진척되면서 그 엄격한 외부 차단설에 한계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는 회고. 시의 언어 자체가 역사적인 것이며, 하나의 작품은 반드시 어떤 양식에 속하고 의장(意匠)을 택하는 것 — 그것들은 모두 비역사적인 것이 아니라 전통이나 습관의 소산이라는 것.
이 자리에서 김 교수가 첫 작품으로 든 시는 이육사의 〈광야〉.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하던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 목 놓아 부르게 하리라.
김 교수는 이육사를 두고 "한국 시단이 아직 서구추수주의의 늪을 벗어나기 전에 우리말의 결과 맛을 기능적으로 살린 시를 쓴 시인"으로 짚었습니다.
3. 김소월의 〈초혼〉 — 님, 그 확장의 의미
"우리 시단 안팎에 끼친 반응으로 보면 김소월은 우리 모두에게 받들어야 할 시인, 곧 국민 시인의 이름에 값합니다."
김소월이 살다 간 시대는 일제 식민지 체제하. 일제는 우리 강토를 강점한 다음 곧 우리 민족의 노예화를 기도했습니다. 우리 역사를 부정하고, 우리 민족의 경제적 토대를 뒤엎었으며, 오랜 전통을 가진 우리 문화를 부정하고, 마침내는 우리말과 글을 쓸 자유를 박탈해 갔습니다.
여기서 빚어지는 논리적 한계를, 김 교수는 김소월의 대표작 〈초혼〉을 다시 검토하는 것으로 돌파구를 열었습니다.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에 헤어진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심중에 남아 있는 말 한 마디는 마저 하지 못하였구나.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붉은 해 서산 마루에 걸리었다. 사슴의 무리도 슬피 운다. 떨어져 나가 앉은 산 위에서 나는 그대의 이름을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부르는 소리는 비껴가지만 하늘과 땅 사이가 너무 넓구나.
선 채로 이 자리에 돌이 되어도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이 작품에서 화자가 비통한 목소리로 부르는 〈사랑하던 그 사람〉을 또 하나의 고유한 우리말로 바꾸면 〈님〉이 됩니다. 김 교수는 이 〈님〉이 사적인 차원의 애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국가·민족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있음을, 화자가 울린 처절한 목소리를 통해 유추했습니다.
4. 형이상시의 전경화 — 만해 한용운
"만해 한용운은 김소월 다음에 등장하여 한국 시단에 강한 충격파를 던진 시인입니다."
연령으로 보면 김소월보다 훨씬 앞섰지만, 시단에 등장하기 전 그는 민족운동에 투신하고 곧 사문(寺門)에 적을 두었던 인물. 그의 시집 《님의 침묵》 가운데 한 편인 〈알 수 없어요〉는 그 바탕을 이룬 선정(禪定)의 차원과 그것을 형상화한 말솜씨로 동시대의 비평가들에게까지 주목의 과녁이 되었다는 평.
바람도 없는 공중에 수직의 파문을 내이며 고요히 떨어지는 오동잎은 누구의 발자취입니까?
지리한 장마 끝에 서풍에 몰려가는 무서운 검은 구름의 터진 틈으로 언뜻언뜻 보이는 푸른 하늘은 누구의 얼굴입니까?
꽃도 없는 깊은 나무에 푸른 이끼를 거쳐서 옛 탑 위에 고요한 하늘을 스치는 알 수 없는 향기는 누구의 입김입니까?
근원은 알지도 못하는 곳에서 나서 돌부리를 울리고 가늘게 흐르는 작은 시내는 굽이굽이 누구의 노래입니까?
연꽃 같은 발꿈치로 가이 없는 바다를 밟고 옥같은 손으로 끝없는 하늘을 만지면서 떨어지는 해를 곱게 단장하는 저녁놀은 누구의 시입니까?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 지칠 줄 모르고 타는 나의 가슴은 누구의 밤을 지키는 약한 등불입니까?
김 교수의 분석은 정교했습니다.
"첫 연에서 다섯 연에 이르기까지 만해의 이 시는 자연의 일부를 주제로 했습니다. 그리고 그에 대응되는 모체를 인간의 몸짓에서 빌려 썼고, 그 앞에 제법 긴 수식어절을 선행시켰습니다. 그러면서 각 연 마지막에는 앞서 한 말들을 의문형으로 돌려, 다시 한 번 한 연의 내용에 새 의미의 단계를 열어 보였습니다. 그것이 불교의 연기설에 끈이 닿은 형이상의 차원입니다."
《님의 침묵》 이전에 이미 만해는 이렇듯 형이상시의 요체를 터득한 것이며, 이는 만해의 시에 끼친 한시(漢詩)의 전통을 실감하게 한다는 진단.
한 매듭
강의의 마지막 한 문장은 그날의 자리 전체를 한 줄로 압축한 것이었습니다.
"한국 현대사와 현대문학에 끼치고 있는 동북아시아의 문화전통은 이처럼 절대적입니다."
안동 출신의 한 학자가, 영가회원들 앞에서, 우리말로 쓴 세 시인의 한 줄 한 줄을 통해 한국 시의 정신적 뿌리가 어디에 있는지를 풀어 보여 준 가을의 한 시간.
출처: 《영가회 40년사》 213~21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