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한 날
2012년 10월 13일, 영가회 회원들이 충남 서산·아산만 일원으로 하반기 문화유적 탐방에 나섰습니다. 5대 회장기의 두 번째 정례 탐방.
이번 탐방의 특별한 자리는 귀로에 류종묵 영가회장이 경영하는 (주)흥국 공장을 견학하기로 한 것. 모든 비용은 류 회장이 전액 부담했습니다.
해미읍성 — 조선시대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곳
충남 서산시 해미면 남문2로, 읍내 한가운데 우뚝 선 성. 첫 답사지인 해미읍성은 평화로운 첫인상 뒤에 무거운 역사를 품고 있었습니다.
천주교 박해의 자취
조선 후기, 서해 물길을 따라 들어온 한국 천주교가 내포(內浦) 지방을 중심으로 자리를 잡습니다. 19세기에는 이 지방 주민의 80%가 천주교 신자였을 정도. 당시 옥사에는 충청도 각지에서 잡힌 신자로 가득했습니다.
옥사 앞에는 커다란 회화나무가 있는데, 이 나무 가지 끝에 철사를 매달고 신자들의 머리채를 묶어 고문하고 처형했다고 전합니다. 지금도 이 나무에는 사람을 매단 철사 자국이 남아 있습니다. 신자가 너무 많아 처형하기 힘드니, 읍성 밖 해미천 옆에 큰 구덩이를 파고 생매장했다고 합니다.
순교의 역사를 뒤로하고 바라보는 읍성은 오히려 평화롭기만 합니다. 음성 안 잔디밭의 벤치에 앉아 휴식을 즐기는 주민과 관광객의 모습. 굴렁쇠를 굴리며 뛰어노는 아이, 투호와 연날리기·제기차기를 즐기는 가족의 모습.
해미순교성지와 〈여숫골〉
읍성 인근에는 무명 순교자를 기리는 해미순교성지(해미성지 성당 일대)가 있습니다. 원형 성당은 무명 순교자들의 넋을 위로하듯 웅장하게 서 있고, 성당 뒤편 일대는 〈여숫골〉로 불립니다.
처형장으로 끌려가던 신자들이 "예수 마리아"를 끊임없이 외쳤는데, 이것이 "여수머리"를 거쳐 "여숫골"이 되었다는 유래.
해미읍성에 얽힌 이런 사연으로 지난해 한국을 찾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해미읍성을 방문하기도 했습니다.
수덕사 — 백제 사찰의 한 자취
서해를 향한 차령산맥의 낙맥이 만들어 낸 덕숭산(德崇山). 북으로는 가야산, 서로는 오서산, 동남으로는 용봉산이 병풍처럼 둘러싼 중심에 서 있는 산. 그 자락에 자리한 한국 불교의 선지종찰이 수덕사.
백제 사찰
중국 사서 《북사》《수서》《주서》에는 "백제는 승려와 절과 탑이 많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문헌에 나타난 백제 사찰 12개 가운데 현재까지 큰 규모를 유지하고 있는 사찰은 수덕사뿐.
수덕사의 창건에 관한 정확한 문헌 기록은 남아 있지 않으나, 학계는 대체로 백제 시대 창건된 것으로 추정합니다. 경내 옛 절터에서 발견된 단청개칠기 기록에 따르면 중종 23년(1528)부터 순조 3년(1803)까지 네 차례 대웅전 보수가 있었음이 확인됩니다.
주요 문화재
- 수덕사 대웅전 — 국보 제49호
- 수덕사 3층석탑 — 지방유형문화재 제103호
- 수덕사 7층석탑 · 육괴정 · 황하루 · 근역성보관 · 사리탑
전설 — 수덕각시와 정혜
수덕사의 절 이름에는 한 전설이 흐릅니다. 백제시대에 창건된 수덕사가 통일신라 시대에 이르기까지 가람이 퇴락해 대대적인 중창불사가 필요했으나, 당시 스님들은 불사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묘령의 여인이 찾아와 불사를 돕기 위해 공양주를 하겠다고 자청했습니다. 미모가 빼어난 이 여인을 가리켜 사람들은 수덕각시라 불렀고, 그 소문이 원근에 퍼지자 여인을 구경하러 연일 인산인해를 이뤘습니다.
그 가운데 신라의 대부호이자 재상의 아들인 **정혜(淨惠)**라는 청년이 청혼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 불사가 원만성취되면 청혼을 받아들이겠다"는 여인의 말을 듣고, 청년은 가산을 보태어 10년 걸릴 불사를 3년 만에 끝냈습니다.
낙성식에 대공덕주로 참석한 청년이 수덕각시에게 함께 떠날 것을 독촉하자, 여인은 "구정물 묻은 옷을 갈아입을 말미를 주소서" 하고 옆방으로 들어간 뒤 기척이 없었습니다. 청년이 방문을 열고 들어가려 하자 여인은 다른 방으로 사라지려 했고, 그 모습에 당황한 청년이 여인을 잡으려 하는 순간, 옆에 있던 바위가 갈라지며 여인은 버선 한짝만 남기고 사라졌습니다.
이후 그 바위가 갈라진 사이에서는 봄이면 기이하게 버선 모양의 꽃이 지금까지 피고 있고, 관음보살의 현신이었던 그 여인의 이름이 〈수덕〉이었으므로 절 이름을 수덕사라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여인을 사랑한 정혜 청년은 인생의 무상함을 느끼고 산마루에 올라 절을 짓고 살았다는 것이 전설의 마무리.
개심사 — 굽은 기둥의 천년 고찰
해미읍성에서 나온 길은 운산면 목장 지대를 지나 개심사로 이어집니다. 일주문에는 〈상왕산 개심사〉라는 편액 — 이응노 화백의 스승인 해강 김규진의 글씨.
일주문을 지나 10분 정도 솔숲을 걸어가면, 무심한 듯 서 있는 절집을 만나게 됩니다. 개심사는 백제가 망하기 불과 6년 전 창건된 천년 고찰. 본래 이름은 **원사(原寺)**였으나 고려 때 **개심사(開心寺)**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외나무다리
개심사 해탈문에 들기 전, 외나무다리와 만납니다. 반듯한 직사각형 못에 큰 통나무 다리가 걸쳐 있습니다. 굳이 외나무다리를 건너지 않아도 경내로 들 수 있지만, 열에 아홉은 이 풍경에 반해 다리를 건넙니다.
굽은 기둥들
개심사에는 외나무다리 말고 눈길을 끄는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각 가람을 받치는 기둥.
하나같이 굽었고, 배가 불룩하며, 위아래 굵기가 다르다. 지금까지 봐 온 매끈하고 다듬어진 기둥이 아니다. 나무를 전혀 손질하지 않고 원래 모습대로 썼다.
해탈문이며 범종각, 심검당 등이 모두 그렇고, 특히 범종각 지붕을 받치는 네 기둥은 제대로 된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 굽은 나무로 이토록 아름다운 집을 지을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한 풍경.
(주)흥국 공장 — 자동화의 한 자리
귀경길에 류종묵 회장이 경영하는 (주)흥국 공장을 견학했습니다.
공장이 마치 교실처럼 깨끗하게 정돈되었고, 자동화된 로봇이 사람을 밀어내고 그 자리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저녁식사를 하러 들어간 구내식당은 호텔 식당처럼 음식도 고급스럽고 분위기도 일반 식당과 달랐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일하고 생활하면 저절로 능률이 오를 것 같다" — 회원들의 공통된 소감.
류 회장이 1978년 (주)흥국 대표이사로 취임한 뒤 40여 년 외길로 단조산업을 키워 온 한 자리. 영가회원이 회장의 일터를 직접 본 가을의 한 풍경.
류 회장기의 탐방 흐름
| 해 | 시기 | 탐방지 |
|---|---|---|
| 2012 | 하반기 | 서산 · 아산만 (해미읍성 · 수덕사 · 개심사) + (주)흥국 |
| 2013 | 하반기 | 중국 정주 · 낙양 · 소림사 · 운대산 |
| 2014 | 상반기 | 중국 항저우 · 쑤저우 · 상하이 · 무석 한국학교 |
| 2014 | 하반기 | 연천 일원 — 재인폭포 · 고석정 |
매년 두 차례의 정례 탐방으로 짜인 5대 회장기의 자취. 그 두 번째 한 날에는 회원들이 회장의 공장에까지 발을 들였습니다.
출처: 《영가회 40년사》 203~20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