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의 종택 — 한 가문의 자취
안동은 한국에서 가장 많은 **종택(宗宅)**과 가풍이 살아 숨 쉬는 도시. 한 가문의 자취가 한 집 한 집에 그대로 남아 있는 자리.
이번 글은 그 가운데 두 자리 — **임청각(臨淸閣)**과 학봉종택.
임청각 — 보물 제182호
건립
조선 세종 때 영의정 **이원(李原)**의 여섯째 아들 영산현감 **이증(李增)**이 안동에 자리를 잡은 뒤, 이증의 셋째 아들 **이명(李洺)**이 건립한 〈ㄷ〉자 별당형 정자 건축. 보물 제182호.
한 자리에 남은 자취
농암 이현보(李賢輔)·백사 이항복(李恒福) 등 옛 자취 있는 분들의 친필이 게판(揭板)되어 있는 자리.
항일의 자리이자, 한 가문의 자취
임청각은 영가회의 자취에서도 깊은 의미를 갖는 자리. 영가회 〈향〉 챕터의 〈안동 — 독립운동의 성지〉 글에서도 함께 다룬, 임시정부 국무령 석주 이상룡(石洲 李相龍) 선생의 생가가 바로 이 임청각.
한 가문이 한 시대를 어깨에 멘 자취 — 한 종택이 한 시대의 망명 정부의 한 자리로 이어진 풍경.
가는 길
시내에서 3km — 안동시청 → 법흥지하도 → 임청각.
학봉종택 — 학봉 김성일 선생의 종가
자리
학봉종택은 조선 선조 때 명신인 학봉 김성일(鶴峯 金誠一) 선생의 종가. 안동시 서후면.
학봉유물관
종택과 함께 학봉유물관이 자리하고 있어, 학봉 선생의 유품 약 500점이 보존된 자리.
김성일 종가 전적은 보물 제905호. 한 가문의 학문이 책으로, 글씨로, 유품으로 한자리에 모인 풍경.
가는 길
시내에서 10km — 안동시청 → 송현동 → 풍산 → 서후면 소재지 못 미침.
종택이 곧 안동인 까닭
안동은 한국 그 어느 지역보다도 종택의 자취가 많은 곳.
- 임청각 — 보물 제182호, 임시정부 국무령 석주 이상룡의 생가
- 학봉종택 — 학봉 김성일 선생의 종가, 학봉유물관 동반
한 가문이 한 집에서 수백 년을 이어 온 자리. 한 학자의 한 평생의 자취가 한 종택에 그대로 남아 있는 자리.
"정신적 가치를 탐구하는 일은 전문가의 역할이지만, 그것을 삶 속에서 실질적으로 지켜 나가는 것은 시민 모두의 일이다."
— 《영가회 40년사》 제4편 〈안동은?〉 가운데
안동의 종택들은 정신문화의 가치가 박물관의 자리가 아니라 〈사람이 사는 자리〉로 그대로 이어진 한 풍경. 영가회 회원들의 〈향(鄕)〉이 결국 한 종택의 한 마당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안동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자리.
출처: 《영가회 40년사》 제4편 〈안동은?〉 443~44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