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의 대표 서원
안동시 도산면 도산서원길 154에 자리한 도산서원(陶山書院). 사적 제170호.
"퇴계 이황(退溪 李滉) 선생 위패 봉안(1574년)"
조선 성리학의 큰 자취가 한 자리에 모인 서원. 영가회 회원들에게도, 안동인 모두에게도 한 마음으로 자긍하는 자리.
자리 개요
| 항목 | 내용 |
|---|---|
| 주소 | 안동시 도산면 도산서원길 154 |
| 지정 | 사적 제170호 |
| 봉안 | 퇴계 이황 선생 위패 (1574년) |
| 건물 | 전교당(보물 제210호) · 상덕사(보물 제211호) 등 17동 |
| 유물전시관 | 옥진각(玉振閣) |
| 유물 | 자리·등경·매화연·청려장·투호·혼천의 등 일반 유품 22점 + 전적류 91권 |
옥진각 — 한 학자의 유품
옥진각(玉振閣)은 도산서원의 유물전시관. 퇴계 선생이 평소 사용한 일상의 한 자리가 그대로 보존된 곳.
- 청려장(靑藜杖) — 명아주로 만든 지팡이, 퇴계 선생의 산책의 한 자취
- 매화연(梅花硯) — 매화 무늬 벼루, 글공부의 자리
- 혼천의(渾天儀) — 천체관측 도구
- 투호(投壺) — 여가의 자리
- 자리·등경 — 일상의 자취
총 일반 유품 22점과 전적류 91권. 한 학자의 한 평생이 한자리에 모인 풍경.
도산서원의 두 큰 특징
1. 정조 임금의 〈추로지향〉 — 1792년의 자리
정조 임금(정조 16년, 1792년)이 규장각 각신 이만수를 시켜 도산서원의 상덕사에 알묘(謁廟)케 하였을 때, 퇴계 선생에게 올리는 **치제문(致祭文)**에서 처음으로 〈추로지향(鄒魯之鄕)〉이라는 표현을 칭했습니다.
같은 자리에서 특별 과거인 **도산별과(陶山別科)**를 보였으며, 그 자취가 지금의 도산서원에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이것이 안동이 〈추로지향〉이라 불리게 된 첫 자리. 1981년 공자 78세 종손 공덕성(孔德成) 선생이 도산서원 원장 재임 시 〈추로지향〉 휘호를 남긴 것도 이 같은 자취 위에 더해진 자리.
2. 2002년 7월 — 도산서원 선비문화수련원
2002년 7월, 도산서원 선비문화수련원이 설립되었습니다. 이는 전국 서원 중 최초로 여성들에게 굳게 닫혀 있던 사당 참배를 서원 건립 후 428년 만에 허용한 자취.
"지금까지 359기 19,098명이 수료하는 등 유교문화의 가치를 오늘에 계승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
성리학적 자취가 박물관의 자리가 아니라 살아 있는 교육의 자리로 다시 되살아난 한 풍경.
도산선비문화체험관 — 2017년 준공
도산서원 인근, 퇴계 종택 부근에 50억 원을 들여 신축한 도산선비문화체험관. 2017년 가을 준공.
"안동은 명실상부하고 유일무이한 우리나라 정신문화 교육의 본산으로 자리매김해 나갈 것이다."
가는 길
시내에서 27km — 안동시청 → 와룡 → 도산서부리 → 도산서원.
안동의 서원 흐름 가운데
안동은 전국에서 가장 많은 40개의 서원을 보유하고 있는 도시. 그 가운데 도산서원은 가장 큰 자취. 다음 자리는 사적 제260호 병산서원(서애 류성룡 추모). 두 서원이 안동의 자취를 받치는 두 기둥.
영가회의 〈향(鄕)〉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를 가장 분명하게 보여 주는 한 자리.
출처: 《영가회 40년사》 제4편 〈안동은?〉 44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