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인의 자랑스러운 고유 언어(말) '웅부(雄府)'

회원 기고 — 김휘동 (金 輝 東, 전 안동국수·전 안동시장)

2026年 05月 13日글 · 김휘동

편집실 안내 — 이 글은 김휘동(金輝東) 회원께서 《영가회 40년사》(396~398쪽) 에 직접 기고하신 글을 편집실이 한 호흡으로 정리한 자리입니다. 김 회원은 전 안동국수·전 안동시장 을 이어 오신 분으로(/archive/saram/myungsa-kim-huigon) — 〈웅부(雄府)〉 라는 두 글자가 어디서 왔고, 700년 동안 어떻게 안동의 받쳐 왔는지를, 안동의 시장이셨던 분로 단정하게 풀어내신 글입니다. 이 글의 짝이 되는 〈한국정신문화의 수도 안동의 브랜드 가치는?〉(/archive/geul/geul-andong-brand) 와 함께 김 회원의 두 글이 영가회 글 챕터에 함께 자리합니다.

〈웅부〉라는 말의 결

"안동사람은 '웅부(雄府)' 라는 말을 즐기며 자주 사용한다."

듣는 사람 또한 자연스럽게 거부감 없이 호으하게 받아들인다는 결. 안동시도 행정업무 예는 〈安東縣府(안동웅부)〉 현판이 결려있다는 결. 거리에 나가면 〈웅부시민〉 이란 음식점 상호와 〈웅부회사〉 라는 회사 상호도 눈에 띤다는 결.

그러나 — 안동을 찾는 광광객이나 내방객은 나지막한 권속 말로 "웅부가 무슨 뜻이냐" 고 의아해 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결. 어쩌면 자긍심을 찾아보면 "웅부(雄府) 는 웅장하게 큰 마을" 이라고 간략하게 표기되어 있다는 결.

〈웅부(雄府)〉 에 대한 의문을 가진 사람들은 — 사전이나 인터넷 검색에도 '웅부'란 출저를 명확하게 알 수 없으며, 이론들은 "안동이 그렇게 큰 고을이었나?" 하는 생각을 가졌을 것으로 생각한다는 결.

"2003년 6월 〈안동웅부 부석재 일정〉 개최식을 마치고 시작(詩作) 을 위해 자리를 이동하던 어느 한 분이 '웅부' 라는 뜻이 무엇인지 알게된 부탁이는 말을 했다."

그 순간 — 아 그렇지, 웅부라는 말은 안동 자연에서만 사용하는 고유의 말이니 타 지역에서 오신 분들에게는 그 정의를 자세히 설명하는 것이 옳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결.

〈안동웅부(安東雄府)〉의 탄생, 1361년 공민왕 몽진

"1361년 12월 15일 고려 31대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안동으로 몽진(蒙難)."

임금이 난을 피해 안전한 곳으로. 김방한, 공민왕과 황비(노국공주), 왕의 모(母) 등 비롯한 황실의 통체 — 안동으로 옮거와 난이 평정된 1362년 2월 10일까지 70여 일간 안동을 고려의 임시 수도의 역할을 했었다는 결.

당시 공민왕은 — 안동 고을 주민들의 도움으로 홍건적의 난을 평정하고 수도 개경(개성) 으로 무사히 환도할 수 있었다는 결.

어필 〈安東雄府〉 현판과 영호루

환도한 개혁군주 공민왕은 — 안동 부민(府民) 들의 뜻을 고맙게 여겨, 당시 안동의 행정구역 지명 복주(福州) 를 — 현재 도(道) 단위 격에 해당하는 안동대도호부(安東大都護府) 로 승격했다는 결.

특허 그 뜻을 더욱 높이 치하하는 뜻으로 — 공민왕 본 어필 〈安東雄府〉 현판을 하사했다는 결.

"그러므로 — 〈웅부〉 는 곧 안동을 높이 들어 세우는 말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안동시가 첫 — 공민왕은 시읍을 답에서 거님던 단풍을 별 영호루에 〈映湖樓〉(영호루) 라 현판을 친립로 하사했다는 결. 지금도 현판이 계속 되어 있는 영호루는 영남 3대 루 중의 하나다는 결.

1895년·1916년·1998년의 결

이렇게 천 년 가까이 안동의 정신을 받쳐 오신 〈웅부〉 의 결이지만 — 1895년 시군통합에 따라 첨가한 그 자리에 2003년 〈안동웅부장학회〉 가 시민공원에 조성되었다는 결. 당시 공원행정을 시민들로부터 공모한 결과 다수가 시민의 〈웅부〉를 신호함에 따라 표제를 새우고 〈안동웅부장학회〉 가 만대되었다는 결.

웅부공원은 — 전통문화로 메시지의 비교 작은 시민분들도 젊은 세대들의 만남의 장소로도 답이 이용되고 있다, 공유의 위원이 시민에게 가까이 오고 있다는 결.

또한 안동문화원의 — 전당 주중인장도 〈웅부홀〉 로 명명되어 있다는 결. 정부는 소규모 학교 통폐합 차원에서 2018년 3월 개교를 목표로 안동 도산 온혜에서 〈안동웅부학교〉 를 개교할 예정이다는 결. 안동시 면지역에 소재한 도산공·임동공·안동공·길안공·임신지원공·길수공·녹천분교 등 5개 학교를 통합해 〈안동웅부학교〉가 신설된다는 결.

이렇듯 안동인 모두의 가슴속에 〈웅부〉라는 자긍심이 똑똑하게 자리잡고 있다는 결.

〈안동웅부전국한시백일장〉 의 결

"자랑스러운 안동의 별 '웅부' 의 가치를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함께 공유하고자 안동시에서 스스로 대회를 시작하였다."

그 햇수이 너무 짧아 각종 종목하나 〈웅부〉의 별명 의 대회가 점차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2005년 11월 — 〈안동웅부 배〉 전국주니어 테니스대회를 시작으로 〈웅부 배 봄성동회〉 〈웅부 배 남녀공도내회〉 〈웅부 배 면 골프대회〉 〈웅부 배 그라운드 골프대회〉 〈웅부동본 배 전국 축구대회〉 〈웅부동본 배 장애인 탁구대회〉 … 이렇게 전국 스포츠대회에 — 〈웅부〉가 붙어나 대회의 시이라이트가 트렌드기지가 인정되어 의는 듯하다는 결.

특히 2003년 6월 처음 〈안동웅부전국 한시백일장〉 을 시작했다, 매년 개최되는 전국한시동회의 수에 영 함부한다, 안동웅부 전국한시백일장은 사들리가는 한자수율의 중요성을 깊이주고 한시가 가진 운유의 멋과 선비성신을 발현하기 위한 전국대회로 그 영성이 너무 높아가고 있다는 결.

해를 거듭할수록 명상을 얻고 있는 안동웅부전국한시백일장은 유교문화의 계승과 한시...

편집실의 정리

이 글이 영가회에 남기는 자리:

  • 〈웅부(雄府)〉 라는 한 단어의 700년 결. 1361년 공민왕의 몽진으로부터 — 어필 〈安東雄府〉 현판 하사, 영호루, 안동대도호부 승격, 2005년 〈웅부 배〉 전국 스포츠 대회까지 — 한 단어가 안동의 정체성을 받쳐 온 한 호흡. 김 회원의 글은 그 결을 가장 단정하게 짚어 두는 자리.

  • 안동시장로 한 안동 회원께서 영가회에 보내신 자리. 다른 회원 기고문이 학자·기업인·언론인·문학가의 결이라면, 김휘동 회원의 글은 — 〈안동 시장로 정리한 한 도시의 결〉 이라는 점에서 가장 단정한 모습. 김 회원의 또 한 글 〈한국정신문화의 수도 안동의 브랜드 가치는?〉(/archive/geul/geul-andong-brand) 와 함께 두 자리.

  • 이유택 회원의 〈영가회 40주년에 부쳐〉(/archive/geul/geul-40junyeon-bucheo) 와 한 호흡으로 호응. 이유택 송파구청장이 안동시·송파구 자매결연을 통해 〈한성백제문화제·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 을 짚으셨다면 — 김휘동 안동시장은 〈웅부 배 전국 스포츠 대회·안동웅부전국한시백일장〉 을 짚으신 자리. 두 글이 한국의 두 자치단체를 잇는 한 자리를 양 받쳐 주는 자리.

(※ 본문의 일부 인명·연도·문구 등 OCR 인식이 불완전한 자리는 회의록·책자 원본 보완 시 다시 다듬어 두겠습니다.)

출처: 《영가회 40년사》 396~398쪽 (회원 기고 — 김휘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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