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 안내 — 이 글은 《영가회 40년사》(415쪽) 제3편 회원 작품 — 〈2. 회원 서화(書畵)〉 의 첫 자리에 실린 攸川(유천) 이동익(李東益) 회원의 서예 두 점을 편집실이 한 호흡으로 정리한 자리입니다.
攸川 李東益 — 약력
攸川(유천) 李 東 益
- 個人展 4회
- 大韓民國 書藝大展 招待作家
- 韓國美術協會 副理事長 歷任
- 韓國書藝文化振興協会 會長 歷任
主要 作品 揮毫 經歷
- 黃道濟·昌德宮·七寶 등 揖匾 10회산 揮毫
- 安錫主念 〈陽之達點〉 紀講碑 升 金石文 多敗 揮毫
- 高麗大學 校 內 趙芝薰 詩碑 揮毫
— 안동 한 회원이 한국 서예계의 가장 결정적인 자리(고려대 조지훈 시비·황도제·창덕궁·칠보 등) 의 揮毫(휘호) 로 단정하게 자리한 모습.
두 점의 서예
첫 점 — 南江秋夜千峰月 (남강 가을밤 천 봉우리 달)
"남강 가을바람엔 천 봉우리 달이요"
中庵 先生 詩句의 한 호흡. 영가회 1대 김해길 회장의 가장 첫 자리 — 1977년 3월 25일 인사동 남강(南崗) 다실의 결(/archive/moim/1977-changrip-chongdae) 과 자연스럽게 호응하는 자리.
두 번째 점 — 北里春風萬樹花 (북외 봄바람에 만 그루의 꽃)
"북외 봄바람엔 만 그루의 꽃이로새"
懷雲齋 主人 攸川 李東益 — 한 시인을 옮긴 휘호. 春風로 자기 자리를 단정하게 펼치는 한 안동인.
영가회와 한 점의 글씨
회원 이동익의 글씨는 — 화려하지 않다는 결. 한 획 한 획에 힘을 빼고, 종이의 결과 먹이 어디서 만나는지 한참을 기다린 뒤에 비로소 한 글자를 내려놓는 — 그런 결이 보이는 자리.
회원께서 글씨를 시작하신 것은 — 청년기 안동에서 만나신 한 스승의 자리에서였다고 전해집니다. 그 뒤로 서울에서 한 평생의 자리를 지내시면서도, 한 해 한 해 글씨을 게을리하지 않으신 결.
편집실의 정리
이 글이 영가회에 남기는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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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서예계의 한 결〉 의 안동 회원. 大韓民國 書藝大展 招待作家·韓國美術協會 副理事長·韓國書藝文化振興協会 會長 歷任 — 한국 서예의 가장 결정적인 자리들을 두루 거치신 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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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江秋夜千峰月〉 한 줄. 영가회 창립의 첫 자리 〈인사동 남강(南崗)〉 의 결과 한 호흡으로 닿는 한 서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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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로 자기 작품을 영가회에 남기신 자리. 친목과 인연의 회에서 — 한 회원의 작품이 자취(自趣) 로 한 자리를 만든 풍경.
(※ 본문의 일부 한자·인명 등 OCR 인식이 불완전한 자리는 회의록·책자 원본 보완 시 다시 다듬어 두겠습니다.)
출처: 《영가회 40년사》 415쪽 (제3편 회원 작품 — 2. 회원 서화 — 서예 攸川 李東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