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多安東〉 — 사람이 많이 나는 고을
안동은 일찍부터 〈人多安東(인다안동)〉이라는 이름을 얻은 자리. 사람이 많이 나는 고을이라는 뜻.
《영가회 40년사》 제4편은 짧게 짚습니다.
"그런 인물들만으로도 몇 권의 책을 채울 수 있다. 여기에서는 그 중에서 일부를 소개하는 데 그칠 수밖에 없다."
이번 글은 그 일부 — 한 시대를 짊어진 안동 출신 인물들의 자취.
고려 시대 — 김방경의 한 자리
上洛公 김방경(金方慶)
고려가 몽고의 침략으로 시달릴 때, 나라의 어려움을 양 어깨에 메고 헤쳐 나간 한 분. 상락공(上洛公) 김방경.
"두 차례에 걸친 元의 일본 정벌(日本征伐)에도 함께해야 했다. 한평생이 元의 압박에서 고려를 지키는 가시밭길이었다."
지금도 낙동강변에 자리한 **상락지(上洛志)**가 그분의 자취를 우리에게 보여 주고 있는 자리.
성리학의 뿌리 — 김자수의 한 발자취
上洛君 김자수(金子粹)
김방경의 발자취를 이어, 우리나라 성리학의 뿌리를 내리는 데 큰 자취를 남긴 흐름. 그 정점에 상락군 김자수가 자리합니다.
김자수는 조선 개국 일등공신으로서, 새로운 조선의 탄생에 한 주춧돌이 된 인물.
"이 모두가 先安金(선안김)의 줄기들이다."
권태사 후예 — 一濱九封君
권부 → 권근 → 권월
고려 말기에 이르러 안동권씨의 시조 **권태사(權太師)**의 후예에서 인물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一濱九封君(일빈구봉군)**이라는 高官大臣들의 집훈을 한꺼번에 펼친 한 가문.
이 가문의 흐름:
- 권부(權溥) — 고려 말 학자의 자리
- 양촌 권근(陽村 權近) — 권부의 손자. 조선조 초기에 더욱 빛이 난 자리
- 花山君 권월(權鉞) — 조선 개국 일등공신
권씨 가문이 고려에서 조선으로 이어지는 한 시대의 자취를 한자리에 떠받친 풍경.
조선 초기 — 安東이 文化의 기둥이 되는 시기
"조선 초기의 문화가 꽃필 때부터, 安東은 우리 文化의 기둥이 될 거장들을 줄짤이로 배출하기 시작한다."
고려 말 김연정의 줄기를 이어, 추요(樞要)·추정(樞庭)·이고(李顆)·이현보(李賢輔) 등 인물들이 뒤를 잇습니다.
농암 이현보(聾巖 李賢輔)
조선 중종 때의 문신·시인. 《어부가(漁父歌)》 등 시조 작품으로 유명. 임청각의 친필 게판으로도 그 자취가 남아 있는 인물.
퇴계 이황 — 동양 성리학의 한 바탕
그리고 그 뒤를 따라 **퇴계 이황(退溪 李滉)**이 나타납니다.
"여기에서 동양 성리학(東洋性理學)의 바탕이 構造로 펼쳐지게 된다."
퇴계의 자리는 도산서원에 그대로 남아 있는 자리. 한 학자의 한 평생이 한 서원에 모인 자리.
퇴계 문하의 큰 자취
퇴계 선생의 문하에서 한 시대를 짊어진 인물들이 잇따라 나옵니다.
- 월천 조목(月川 趙穆) — 도산서원의 종향(從享)
- 학봉 김성일(鶴峯 金誠一) — 학봉종택·학봉유물관에 자취 남음
- 서애 류성룡(西厓 柳成龍) — 영의정, 《징비록》, 병산서원에 봉안
- 그 외 — 우리 역사에 한자리의 자취를 새긴 분들
"우리 역사에 한 자리의 자취를 構築했다."
— 《영가회 40년사》 제4편 편집부
한 고을의 자취 — 한 시대를 잇는 한 자리
| 시대 | 인물 | 자취 |
|---|---|---|
| 고려 | 김방경 (上洛公) | 몽고 침략기 명장, 일본 정벌 |
| 고려 말 | 김자수 (上洛君) | 조선 개국 일등공신 |
| 고려 말 ~ 조선 초 | 권부 → 권근 (陽村) → 권월 (花山君) | 안동권씨의 한 가문, 一濱九封君 |
| 조선 초 | 이고·이현보 (聾巖) | 시문의 자리 |
| 조선 중기 | 퇴계 이황 (退溪) | 동양 성리학의 바탕 |
| 조선 중기 | 조목 (月川)·김성일 (鶴峯)·류성룡 (西厓) | 퇴계 문하, 한 시대 |
한 고을이 한 시대씩, 한 시대씩 사람을 길러 낸 자취 — 그 자취가 바로 〈人多安東〉이라는 별칭을 만든 한 풍경.
영가회 회원들의 〈향(鄕)〉이, 알고 보면 모두 이 인물들의 자취 위에 더해진 한 자리.
출처: 《영가회 40년사》 제4편 〈안동은?〉 425~426쪽 (편집부 정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