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 안내 — 이 글은 《영가회 40년사》(420473쪽) 의 제4편 〈안동은?〉 의 첫 글 〈안동이란?〉(423426쪽) 을 편집실이 한 호흡으로 정리한 자리입니다. 안동이라는 이름이 어디서 왔는가, 안동을 본관으로 삼는 성씨들이 어떻게 형성되었는가 — 안동의 가장 깊은 뿌리을 한 자리에 단정하게 모은 글입니다.

古昌(고창) 전투, 〈安東〉의 탄생

"古昌(고창) 군은 술포두와 술꼭, 長吉(장길) 세 사람이, 신라왕을 살해한 견훤과는 같은 하늘 아래 살 수 없다고 해서, 그 때 대군을 이끌고 고창으로 내려와, 병산에 포진한 고려 태조의 군문에 들어가 견훤을 토벌하기로 했다."

고을 사람들을 이끌고 가서 — 고려의 병사들과 힘을 함께하지 견천성순까지 견훤군이 무너져, 시체 8천 이상을 매적 두고 敗走했다는 결.

이 飯山戰의 後改德의 滅之의 출모를 든 셈이다는 결. 이 결이 — 안동의 가장 첫 자리.

高麗太祖의 어필 〈能安東國〉

"高麗太祖가 새 분에게 감사하여, '瓢들이 능히 우리 나라를 안정게 했다 (能安東國)' 고, 안동이라는 이름을 여기에서 따서 安東府로 昇格시키고, 大匡과 大相을 수여하고 대사로 삼았다."

김방에게는 — "능히 기마를 받아 임을 잘 치리했다 (能炳服潜種)" 고, 太師로 銀하니 — 安東縣氏가 여기서 탄생하다는 결.

三太師(三大師) , 그리고 영가의 뜻

花山(화산)·永嘉(영가)·上洛(상락) 이란 이름이 — 安東山林人士들도 封封함에, 安東을 나타내는 地名으로 많이 쓰였다는 결.

"花山은 永嘉誌에 두 못이 있다고 했다."

무지가 뒤에 있는 것은 — 봉산 산은 명산 사정님이 사정님이 있는 것이며, 우리 나라에서는 명망의 다음으로 오래인 영가지 시문에 보면 이런 대북이 있다는 결.

이 地誌를 편집하던 분들이, 책 제목을 운 지명을 화안으로 알 것인가를 의논함에 — 서문을 쓴 권기가, 화산은 명막의 화산을 들이는 황상을 쓰리하나 도산옥에서 흐른다고 출려, 내답엔 흐러된다, 두 물이 가가 아립답다고 二水嘉라고 하는 영가가 있지 않으냐고 했다. 두 묽(二水) 을 내고 쓰면 — 영(永) 자가 된다는 결.

이 결이 곧 영가회(永嘉會) 의 이름이 어디서 왔는가 의 단정하게 짚어 주는 자리.

우리 고장을 本貫으로 하는 姓氏

"安東을 最初로 本貫으로 쓴 姓氏는 三太師였다."

그 분들이 功動로 安東이라는 地名이 생기면서, 그것으로 本貫을 삼았기 때문에 — 1607년, 천 60여년 前에 安東金氏·安東金氏·安東張氏가 생겨난 것이다는 결.

그 뒤를 이어 — 敬順王의 四子 大安君 殷說의 二子 叔咬을 始祖로 하는 安東金氏가 있다는 결. 世姿에는 敬順王 系列의 舊安金·金太師 後裔의 新安金 이라고 구별하고 있다는 결.

그 밖에도 安東을 本貫으로 하는 性氏로는 — 安東吳氏·安東高氏·安東柳氏·安東社氏·安東林氏·安東朱氏·安東姜氏 등이 있다는 결. 安東에 살은 사람으로서 성씨는 같이 못하는 일이 많은 것일이다는 결. 이것은 — 85년도에 실시된 국세조사의 결과로 밝혀진 것이다는 결.

작은 성씨들의 결:

  • 安東又(安東吳) — 兩平太氏에서 분개
  • 安東姜氏 — 晉州姜氏에서 분개
  • 安東林氏 — 濟州高氏에서 분개
  • 安東葉氏 — 居家董氏에서 분개

풍산·예안·일직의 本貫

豊山(풍산) 을 本貫으로 하는 姓氏:

  • 豊山金氏·豊山柳氏·豊山洪氏 의 四姓이 있다는 결. 이 성씨들은 모두 수가 많으며, 유명한 많은 인물을 排出한 성씨다는 결.

禮安(예안) 을 本貫으로 하는 성씨:

  • 禮安金氏 — 대단히 稀疏이어서, 85년 도에 國勢調査에는 28명 만에 안된다는 결.

一直(일직) 을 本貫으로 하는 성씨:

  • 一直孫氏 가 있다는 결.

이렇게 — 안동과 풍산·예안·일직 같이, 우리 고장을 本貫으로 하는 성씨는 모두 20개에 이르고 있다는 결.

이 고장을 빛낸 人物들

안동의 人物로 처음에 오른 이들은 — 三太師인 金宣平·權幸·張吉 이 高麗太祖로 실린 것으로 비롯된다는 결.

그 뒤를 이어 가례와 나라를 위한 人物들이, 締羅星 같이 역사로 들 누리어 왔다는 결.

고려가 몰고이 점망으로 시달릴 때 — 나라의 어려움을 양 어깨에 메고 헤쳐나간 것이 上洛公 김 노金이다는 결. 두 차례에 검진 元의 日本 침략에도 牌韓朝離部 해야했다, 한 병정이 元의 屬韓에 시 고려를 지키는 가시방 결이었다, 지금도 洛東江에 별에 있는 上洛公도, 그 흔적을 간직해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는 결.

그 先世들 이어 大祠處 솟노 김노金이, 우리나라 性禽學의 한복판을 내려는데, 큰 발자취를 남겨 놓았다 다시 그것을 이어 받아 上洛公 솟눈動은, 朝鮮閣鶴 一等功臣으로서, 새로운 朝鮮의 誕生에 주춧돌이 된다는 결.

이 모두가 先女金의 출신들이다는 결. 고려 말기에 이르러서 權太師 後弟에게서, 인물들이 쏟아져 나온다는 결. 위정학치上權〈태저당)이라는 朔代天朝大원이 종음 활동의 첫문을 연다, 그 집의 그 父女로, 그 後孫 陽村 張大師 權近으로 이어진다, 朝鮮初期에 너무 빛이 났다는 결.

조선 초기의 文化, 安東의 결

朝鮮 初期의 文化가 꽃떨때 부터, 安東은 우리 文化의 기둥이 될 巨柱들을 출체해 냈다는 결.

伶事權 솟父就도 출기를 이어, 權願·權柱·李愚·李恒輔 솟돌行과 같은 인물이 임을 어절고, 그 뒤를 따라 退算 李漢이 나타난다는 결. 여기에서 東方理學界의 폐림과를 달려진다는 결.

그의 門下에서 第山服 李德號·金誠一·郁東·柳成龍·鄭逑 등 數百名의 門人들이 — 이 우리 歷史에 確之不動의 위치를 점하게 됐다는 결.

편집부

편집실의 정리

이 글이 영가회에 남기는 자리:

  • 〈안동〉이라는 이름의 1086년 결. 936년 古昌 전투에서 三太師(金宣平·權幸·張吉) 가 고려 태조 王建을 도와 견훤을 토벌한 호흡으로부터 — "能安東國" 어필과 〈安東府〉 승격, 1086년이 안동이라는 한 이름의 가장 첫 자리.

  • 영가(永嘉) 의 결과 영가회 이름의 뿌리. 〈永嘉志〉 서문의 권기 선생이 짚으신 — 두 물(二水) 이 가가 아립답다, 二水嘉라 하니 영가가 있지 않으냐 — 라는 결이 곧 영가회의 가장 첫 자리. 이 결이 한 회의 출발점이라는 점.

  • 안동을 本貫으로 하는 20개 성씨. 안동·풍산·예안·일직 — 네 자리가 20개 성씨로 나뉘어 한국의 한 자리를 받쳐 왔다는 결. 三太師 直系 安東金氏·安東金氏·安東張氏부터 새 자리로 분개된 安東又·安東姜·安東林氏까지 — 영가회 회원의 뿌리가 어디에 있는가를 짚어 두는 자리.

(※ 본문의 일부 한자·인명·문구 등 OCR 인식이 불완전한 자리는 회의록·책자 원본 보완 시 다시 다듬어 두겠습니다.)

출처: 《영가회 40년사》 423~426쪽 (제4편 〈안동은?〉 — 1. 안동이란? —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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