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 안내 — 이 글은 《영가회 40년사》(434~450쪽) 제4편 〈안동은?〉 — 〈안동시 현황〉 의 17쪽에 걸친 종합 자료을 편집실이 한 호흡으로 정리한 자리입니다. 안동시청에서 직접 정리한 호흡으로 — 연혁·위치·면적·인구·산업·관광지·유적·서원이 한 호흡으로 자리한 가장 두꺼운 결의 글입니다.
안동의 연혁
고려 시대
"명종 27년(1197년)에 남적(南賊) 김삼(金三)·효심(孝心) 등이 주군(州郡) 을 겁탈 노략하니, 자사(刺史) 를 보내 행정하였는데 부사(府使) 가 공이 있다하여, 도호부(都護府) 로 승격하고, 신종 7년(1204년) 동경(東京 / 경주) 의 야별초(夜別抄) 패자(牌子) 등의 무리를 모아 반란을 일으키자 이번에도 이를 진압하는데 공이 있었으므로, 대도호부(大都護府) 로 승격"
충렬왕 34년(1308년) 다시 복주목(福州牧) 으로 고쳤다가 — 공민왕 10년(1361년) 홍건적(紅巾賊) 의 난을 피하여 왕이 남쪽으로 행자하여 이 고을에 머무를 때 고을 백성이 충성을 다해 왕을 봉공하였다고 다시 대도호부로 승격하고, 인근 17개 군의 권리를 관할하게 했다.
우왕 9년(1383년) 에는 안동도(安東道) 로 개칭하고 — 원수(元帥) 의 부사(府使) 를 두었다가 동 14년(1388년) 부사제(府使制) 로 환원하였다.
조선 시대
"조선시대에는 세조 때에 진(鎭) 을 두고 부사(府使) 로서 병마첨도부사(兵馬僉度副使) 를 겸하게 하였다가 얼마 후 부사(府使) 는 폐지된다."
선조 9년(1576년) 에는 관내에 패륜아 신씨(申氏) 가 그 어머니를 죽인 변이 있어 현(縣) 으로 격하되었다가, 동 14년(1581년) 다시 부(府) 로 회복되었다. 광 52년(1776년) 도현(道顯) 의 역변(逆變) 으로 다시 현(縣) 으로 격하되었다가 정조 9년(1785년) 다시 부(府) 로 환원된다.
고종 32년(1895년) 또다시 승격하여 관찰부를 설치하여 — 인근 17개 군을 통할하게 하다가 1년 후 폐지하여 군으로 고침과 함께 감천면(甘川面) 은 예천군(醴泉郡) 에 내성면(乃城面)·춘양면(春陽面)·소천면(小川面)·재산면(才山面) 은 봉화군(奉化郡) 에 각각 편입되었다.
근대
1914년 예안군(禮安郡) 을 병합 19개 면으로 편성하고, 1931년에는 안동면을 안동읍으로 승격, 1963년 안동시 승격, 1995년 안동시·안동군을 통합한 안동시로 다시 출범되어 — 1읍 13면 9동의 행정구역으로 자리하고 있다.
위치
"안동시는 경상북도 동북부 내륙중심에 위치한 도시로 동으로는 영양·청송, 서로는 예천·남으로는 의성, 북으로는 영주와 봉화군에 인접하여 있으며, 북부지역의 교통 요충지이다."
태백산맥이 줄기차게 뻗어 그 맥을 이루고, 낙동강은 북에서 남으로, 또 동으로 사행(蛇行) 곡류한다. 안동댐과 임하댐 합수까에 동서로 관류하고, 안동평야를 일대형으로 던하여 정한 호수가 절경을 이루고 있다.
시의 좌표는 — 비교적 평탄하나 호남도 산이 인접하여 분지지정에 거의가 산간에 위치하며, 충산평야를 제외하고는 평지가 적은 도형 편이다.
토질은 낙동강을 중심으로 강내수는 거의가 점토질(粘土質) 이고 강외수는 사토질(沙土質) 이다.
시의 극지점
| 시청 소재지 | 단 | 경도와 위도의 극점 — 지명 / 극 / 점 | 연장거리 |
|---|---|---|---|
| 경북 안동시 퇴계로 115 (명륜동 344번지) | 동단 | 임동면 마령리 / 동경 129˚00′ / 북위 36˚35′ | 동서 51.7㎞ |
| 서단 | 풍천면 신성리 / 동경 128˚26′ / 북위 36˚35′ | 남북 58.3㎞ | |
| 남단 | 길안면 송사리 / 동경 128˚51′ / 북위 36˚23′ | ||
| 북단 | 녹전면 매정리 / 동경 128˚48′ / 북위 36˚49′ |
면적
"안동시의 총면적은 1,521.94㎢로 서울특별시 면적(605.33㎢) 의 2.5배이며, 전국 기초자치단체 중 가장 넓다."
학가산·천지갑산·천등산·왕모산정 등 천째의 자연절경을 가진 임야가 70.4%인 1,067.22㎢로 대부분을 차지하며, 경지는 14.5%인 220.64㎢, 도로 등 기타 면적이 15.1%인 234.0㎢를 차지하고 있다.
주요 유적·서원의 결
안동의 가장 깊은 자리에는 — 천년이 넘는 안동을 그대로 받쳐 주는 유적·서원이 있다는 결.
안동대사로 (지방기념물 제15호)
- 고려 개국공신 김선평(金宣平)·권행(權幸)·장길(張吉) 三太師의 위패 봉안
- 1540년(중종 35년) 김상철 부사가 현위치로 이전
- 상태사의 유물, 옥금록 외 23점 보존
- 북문동(구시청앞) 에 위치, 안동역에서 5분거리
- 2월·8월 中丁日에 향사 봉행
학봉유물관
- 시후면 충산대사로 2830-6 / ☎ 852-2087
- 조선 선조때 명신인 학봉 김성일선생의 유물보관
- 김성일 종가 전적도서 제86호(보물 제805호) 등 유품 보존
- 시내에서 10㎞(안동시청 → 충현동 → 송야교 → 시후면 소재지 못미침)
고산서원
- 남후면 양산길 53-1 / 경북도기념물 제56호
- 大山 이상정(李象靖) 선생과 아우 小山 이광정(李光靖) 선생을 제향
- 강당에 경앙사, 호인당, 양지재, 백승각 등 9동이 있으며 경관이 뛰어남
- 시내에서 10㎞(안동시청 → 안동대교 → 무릉 → 암산유원지)
북계서원
- 김안만 종효로 1736-5 / 경북도민속자료 제19호
- 보백당(寶白堂) 김계행(金繼行) 선생과 송계(松溪) 옥고(玉皐) 선생을 제향
- 고종 6년 서원철폐시 훼손되고 강당과 음봉루·진덕문...
편집실의 정리
이 글이 영가회에 남기는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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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의 1086년 연혁. 고려 명종 27년(1197년) 도호부 승격부터 — 신종 7년 대도호부·충렬왕 34년 복주목·공민왕 10년 安東雄府·우왕 9년 安東道·조선 세조 진(鎭)·선조 9년 현(縣) 격하·고종 32년 관찰부·1914년 예안군 통합·1931년 읍 승격·1963년 시 승격·1995년 통합시 출범 — 까지이 한 글에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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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시의 행정·지리적 결. 경상북도 동북부 내륙중심, 1,521.94㎢(서울의 2.5배, 전국 기초자치단체 중 가장 넓음), 임야 70.4%·경지 14.5%·기타 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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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太師와 학봉·대산·보백당 등 안동선비의 받쳐 주는 유적·서원. 안동대사로·학봉유물관·고산서원·북계서원 — 한 도시을 가장 받쳐 주는 자리들.
(※ 본문의 일부 한자·연도·지명 등 OCR 인식이 불완전한 자리는 회의록·책자 원본 보완 시 다시 다듬어 두겠습니다. 본문은 PDF 10의 17쪽 분량 중 일부 핵심 결만 추출하였으며, 더 상세한 유적·산업·관광 자료는 원본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출처: 《영가회 40년사》 434~450쪽 (제4편 〈안동은?〉 — 4. 안동시 현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