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주 기억하기 — 기억이 사라지기 전에

회원 기고 — 박정희

2026年 05月 10日글 · 박정희

손주가 물었다

어느 날 손주가 물었다. 할머니는 어디서 왔냐고. 안동이라고 대답했더니, 안동이 어디냐고 다시 물었다. 경상북도에 있는 도시라고 했더니, 왜 거기서 서울로 왔냐고 물었다. 나는 한참 생각했다. 왜 왔는지를 설명하려면 내 인생 전체를 이야기해야 했고, 그 이야기 속에는 안동의 풍경과 사람들, 영가회의 자리들이 모두 들어 있었다.

안동에서의 유년

나는 안동 시내에서 자랐다. 낙동강이 보이는 자리, 감이 익는 가을이면 마당이 주황빛으로 물드는 집. 아버지는 말이 없는 분이었지만 저녁마다 마루에 앉아 하늘을 보시던 모습이 지금도 선하다. 어머니는 이야기꾼이었다. 옛 이야기, 집안 이야기, 마을 이야기. 그 이야기들이 내가 안동을 기억하는 방식의 바탕이 됐다. 서울로 온 것은 결혼 때문이었다. 안동을 떠나는 것이 슬프지 않았냐는 질문을 받을 때면 나는 잘 모르겠다고 대답한다. 그때는 슬픔을 느낄 겨를이 없었다.

기억이 사라지기 전에

이제 나이가 들면서 기억이 흐려지는 것이 느껴진다. 어머니 얼굴의 세부, 우리 집 마당의 감나무가 정확히 어디 서 있었는지. 그것들이 조금씩 희미해진다. 그래서 이 글을 쓴다. 손주에게 남겨주고 싶어서. 영가회에서 만난 사람들, 함께 나눴던 이야기들, 그 모임이 서울에서 나에게 무엇이었는지를 기억이 사라지기 전에 적어두고 싶었다. 이것이 내가 영가회에 빚진 것들에 대한, 할 수 있는 한 가지 보답이다.

출처: 《영가회 40년사》 19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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