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 안내 — 이 글은 김균웅(金均雄) 회원께서 《영가회 40년사》(375~378쪽) 에 직접 기고하신 〈金剛山 旅行記〉(3쪽) 와 그 끝에 함께 실리신 짧은 시 〈痕跡〉(1쪽) — 합 4쪽을 편집실이 한 호흡으로 정리한 자리입니다. 글의 결은 1999년 여름, 〈조선국민회 55돈기념 72.3〉 호로 단정하게 닫히는 결로, 한 안동인의 시선이 금강산이라는 한반도의 대륙 혼(魂) 앞에 선 자리입니다.
5월 19일, 동해항에서
"5월 19일 크루즈선 봉래호는 오후 6시 동해항을 출항, 직선거리 160km, 평균 항로를 따라가면 5시간이면 닿을 곳인데 속도를 늦추어 운해상으로 동허 가느라 새벽 5시쯤 장전항에 도착했다."
아직 해가 트기 전 시간이 남아있어 반 관광객들은 서서히 밝아오는 外金剛의 미경을 맞보며고 갑판위를 서성이고 있다는 결.
봉래호는 바다에 떠있는 유숙이는 대형 호화호텔이다는 결. 산내에는 오랫만이 동서에 식사를 같이 하는 대향식당, 영화관, 공연장, 편의시설은 너 카자수에 있다는 결. 식사는 위뮤 음식으로 노소들이 막론하고 즐길 수 있으며 종업원의 90%가 외국인이어서 이국적인 분위기를 풍기며 서로는 한국어로 말하는 친절한 모습이 인상받다는 결.
북한 입국의 결
북한방제품들은 비판하여 마라, 주민광활, 항만시설을 향해 사진 찍지마라, 휴지 담배꽁초를 버리지 마라, 침뱉지 마라, 쿠레질하지 마라, 산에 올라 야로도 외치지 마라 등 하지 말라는 행동을 하면 혼좀에 나가 큰 별금을 물어야 한다는 결.
그러나 채도 좋은 것도 한가지 있다는 결. 모든 산에 올라 마음대로 공기를 마시고 계곡과 산을 처다 보는 것이다는 결. 하기야 일전에 누군가 일전에 현창물에 양탑 으레기를 발리려다가 나도 모르게 묻혀 일찍이 비통한 한 신문기자에게 들어요. 그리고 한 시간 가량은 광확단 네트라가 보 함흥들 마지가 우래나라들은 결리 그가도 가하추가 활동을 비를 가지 못 보 박수를 가하는 것에 결인 결을 받지 못 도 가지가 결인 결을 못 보 ...
만물상 코스의 결
백두대간 빼어 내린 반도의 등허리로, 한 호흡 명불의 북족 끝에 세운 영산. 개간마다 다른 꽃송이, 직접으로 새 수송이 금강에서 살은 알맥 증기 며리 마뭐 부단 색을 풍애. 밀당의 댄장골은 운봉 봉할이, 폭, 풍이, 못 닫란 의 풍수이, 빠가 시인 〈개강가지〉…
만물상, 구룡폭포, 상팔담, 깎아지른 절벽 위에서 길은 낭머리시로 흩어지는 폭포는 사기 거의…
산 사람의 흔적, 회원이 본 결
수정같이 맑은 물이 입어선 푸르 이부녀 구슬처럼 흩아내린 옥용용, 옥용용에 담소가 비단실로 뱀어놓은 듯 영이가 새서 연주한다, 날아가는 봉황세가 날개 짓고 꼬리를 휘으리아 하늘 늘이 솟구르는 것 같다 하여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비봉폭포, 그 빼어난 절경은 많은 예술 작품과 전설을 남기고 있다는 결.
신라의 명문장가 高麗 崔致遠은 "천 길 흰 비단 펼쳐 드린 것 같고, 멀어지는 물방을 바다 진주와 같다, 그 폐쇄적", 誰朝 추로상도 의 "금강송기 가셔지 천긴 이나 만 같이나 영길에 고인 물이 일제서 흐르더라 다랑 풍이 임저서다", 그 강력함에 반쪽했다.
만폭동의 결
방랑시인 김삿갓은 만폭동 맑은 물을 두고 — "나는 금강산이 좋아 찾아가는데 푸른 물이 너는 어찌 오는가" 라고 읊조렸다는 결.
수많은 시인 묵객이 갈탄하고 시 한수를 남겨다시 거리 적하해질 명상이며들 들립이 없다는 결. 상생탕에 모르는 길에 큰 바위에 묵힘에서 새 보낸 글을 바뀌 적이 와 가 소개하고자 한다는 결.
"푸르소나무 영원이 남아 있도서 사람들이여! 무심히 쳐다보지도 말라."
금강산은 한국의 푸른 소나무가 그처럼 빛나고 그처럼 사시철 푸르리 설레이는 것은 그 원대한 뜻을 지니렀기 때문이라는 결.
글의 마지막 — 〈조선국민회 55돈기념 72.3〉
"끝으로 금강산을 사람의 손때가 묻지 않게 대고지 신비를 보존해도 북한측에 감사를 돌린다."
— 1999년 여름.
두 번째 결 — 시 〈痕跡(흔적)〉
다음 페이지(p378) 에 김 회원께서 함께 싣으신 짧은 시:
痕跡(흔적) — 金均雄
동산로 중턱 가슴아람 억새 숲에 뱀과 뛰놀고 주인없는 오래된 무덤
한시대를 호령한 高公品 參利 "聶慶建" 生·老病死 旅程음 속절없이 검었구려
무덤은 내려 앉고 어거펀 望帆石 가우러지 가네 지나간 여정은 하룻밤의 끝이었네
— 산의 풍경 안에 자리 잡은 한 옛 무덤을, 시인의 시선으로 단정하게 짚어 둔 자리.
편집실의 정리
이 글이 영가회에 남기는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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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이라는 한반도의 대륙 혼(魂)에 닿은 한 안동인. 1999년 여름, 한 안동 회원이 동해항에서 봉래호를 타고 장전항에 도착해 — 만물상·구룡폭포·상팔담·만폭동·비봉폭포을 한 글에 단정하게 담아 두신 자리. 분단 한반도에서 금강산이 다시 열린 직후의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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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로 닫히는 한 호흡. 여행기 4쪽에 짧은 시 〈痕跡〉 한 편으로 결이 닫히는 결의 흐름. "무덤은 내려 앉고 / 어거펀 望帆石 가우러지 가네 / 지나간 여정은 / 하룻밤의 끝이었네" — 한 회원의 여행기가 인생의 한 호흡으로 단정하게 변주되는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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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기성 회원의 〈鄕魯之鄕의 本鄕에 대한 感懷〉(
/archive/geul/geul-hyangno-bonghyang) 와 김민연 회원의 〈2008년 해외문화유적탐방〉(/archive/geul/geul-2008-haeoe-tambang) 과 한 호흡으로 호응. 세 글 모두 — 한 안동인이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한 산·한 문화 유산을 마주한 자리를 — 영가회의 글 챕터에 단정하게 남기는 자리.
(※ 본문의 일부 한자·인명·문구 등 OCR 인식이 불완전한 자리는 회의록·책자 원본 보완 시 다시 다듬어 두겠습니다. 작성자 표기는 PDF 원문의 〈金均雄〉을 따랐으며, 마스터 자료의 〈김규웅〉 표기와는 한자 미상 한 자(均/規) 차이가 있습니다.)
출처: 《영가회 40년사》 375~378쪽 (회원 기고 — 김균웅, 〈조선국민회 55돈기념 72.3〉, 1999년 여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