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 안내 — 이 글은 이유택(李 유 택) 회원께서 《영가회 40년사》(353~355쪽) 에 영가회 40주년에 부쳐 직접 기고하신 글을 편집실이 한 호흡으로 정리한 자리입니다. 이 회원은 전 송파구청 구청장(2회 6년) 을 이어 오신 분으로, 1990년대 말 영가회와 인연을 맺으신 뒤로부터 — 송파구청장 시절의 안동 정신 펼침, 2005년 안동시·송파구 자매결연의 결까지 — 한 원로 회원이 단정하게 갈무리된 자리입니다. 2018년 3월 집필.

글의 시작 — 영가회 40주년의 인사

고향 안동의 발전을 영원하는 재경 안동인의 기개를 보여주고 다항상 이의 외요들을 달래주었던 영가회가 — 40주년을 맞이하였다는 결. 우선 그간 영가회를 이끌어주신 임원진과 회원님들의 노고에 감사하게 생각한다는 결.

"내가 영가회와 영광스러운 인연 맺은 게 1990년대 말이니, 그 때로부터 어언 20년이 흘렀다."

세월이 흘러간에 따라 영가회 내에서도 세대교체가 활발히 이루어져, 이제는 — 젊음이 풍 친 풍기는 활기찬 모임이 된 것 같다는 결.

2000년 송파구청장 출마 시 영가회의 결

내가 2000년에 송파구청장으로 출마하였을 때 — 현재 재경 대구·경북 시도민회 부복기 회장이 영가회 회장을 맡고 있었다는 결. 당시 류 회장을 비롯한 많은 영가회 회원들께서 영가회의 폭 당선되어야 한다며 발 벗고 나서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주셨다는 결.

그 때 진행에 못이없게 너희 주신 고마운 정을 지금까지도 잊을 수가 없다는 결. 그러나 구청장으로 당선된 후 영가회 발전에 별로 기여한 바가 없는 것 같아 — 항상 죄스러운 마음을 가눌 수가 없다는 결.

안동의 정신, 송파구청장의 결

서울로 올라와서, 많은 사람들로부터 안동향만이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는 결. 그런 때마다 안동인의 굳지를 잃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다졌다는 결. 더욱이 안동을 상정하는 — 숭문(崇文)·공정(公正)·애국(愛國) 정신의 결정체인 영가회원이었기에, 항상 적심을 하는 데에 마음이 더 없이 무거웠다는 결.

송파구청장을 한 동안, 나는 — 고향을 위하는 길이 영가회를 위한 길이라는 생각으로, 늘 구민들이 안동에 대해 좋은 이미지를 갖게 할 수 있는 길을 찾고자 노력했다는 결. 특히, 어려서부터 선대들이 유립 선비 정신에 흠뻑 깊어든 까닭에 — 구청을 평지원에서도 구민들에게 정조료치사상을 고취하기 위한 일을 많이 했다는 결.

정로당 어르신 점심·골목 호양이 할아버지

재임 초기에, 판내에 점심을 거르는 어르신이 많다는 말을 들었다는 결. 그래서 처음으로 시작한 사업이 — 정로당에 나오시는 3,000여 명의 어르신에게 매일 따뜻한 점심을 드리는 〈정로당 어르신 점심 드리기 사업〉 이었다는 결.

그리고 — 〈골목 호양이 할아버지〉 제도 를 만들어 600명의 위로 어르신들로 하여금 두 분이 한 골목씩 받아 동내 환경을 돌보고 청소년을 선도하게 했다는 결.

덕대 교양을 같은, 위엄 있는 어르신들의 활동으로 인해, 이 사업은 마음의 도덕성을 새우 회복시키는 데에 큰 도움이 되었다는 결.

이와 함께 기 백억원을 들어 청소년 수련관을 짓고, 관내 초·중·고 학생들에게 예절교육을 시켰다는 결. 또한, 청소년에 민족혼을 심어주기 위해 관내 모범학생들을 선발하여 — 중국의 독립운동과 고구려 유적지를 답사하는 역사여행을 보내기도 하였다는 결.

2005년 안동시·송파구 자매결연

이러한 대공무사(大公無私) 의 자세는 — 영가인이라는 자부심과 명예를 소중히 여기는 정신이 부지불식간에 옴에 베어있었기에 가능한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는 결.

특별히 잊을 일 없는 일이 — 안동시의 김휘동 전 시장과는 영가회·재경 안동 향우회 등 고향 모임에서 자주 만나는 일이 많아, 가깝게 교류하다가 2005년 4월 8일 안동시와 송파구가 자매결연하면서 더욱 돈독해졌다는 결.

김휘동 전 시장은 전국적으로 알려진 명시장으로서, 탁월한 행정력을 갖추셨음은 물론 안동·하회탈춤과 같은 전통문화를 세계화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는 결. 송파구와 안동시는 매년 10월, 송파구의 〈한성백제문화제〉 와 안동시의 민속놀이전 —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 에 서로 문화·예술단을 보내 축하공연을 하면서 문화를 교류했다는 결.

송파구민의 안동 방문

이때 송파구에서는 많은 직능단체회원과 지역 어르신 등 100여 명이 안동시를 방문해 행사에 참여하고 하회마을, 도산서원을 들러보면서 안동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일정을 가졌다는 결.

또한, 안동시에서도 송파구 일원에서 안동의 농·축산물을 판매하는 행사를 자주 열었다는 결. 이 행사는 — 주민들에게 반응이 무척 좋아 하루에 소 6마리까지 팔린 적도 있었다는 결. 그 밖에도 구청장으로 재임하는 내내 — '안동의 선비정신'을 송파 구민들에게 전파하는데 심혈을 기울였는데, 이는 구청을 멈치는 데에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는 결.

글의 마지막 — 영가회 40주년의 한 결

내가 공직을 떠난 지 십 수년이 되어 옛일도 떠오르려니와 — 이렇게 정황하게 여러 얘기를 늘어놓는 것은 — 우리 영가인들이 고향에 좀 더 관심을 갖고 기회만 찾는다면 정신문화의 수도인 안동의 부흥을 위해서도 일 도움이 되고, 영가회의 발전 또한, 기할 수 있는 방법이 많이 다고 생각하기서이다는 결.

다행스러운 것은 — 설날이 추석 때마다 손자들을 데리고 안동에 내려와 선영(先塋) 을 들리고도 종택(宗宅) 이나 고택(古宅) 을 찾아 숙박을 하면서, 안동의 전통을 이어가려고 애쓰고 있다는 것이다는 결. 전통을 지키기 위해 십 수 년 째 이어오는 그 모습을 보면 거뜻하기 그지없다는 결.

"영가회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하며 이만 줄입니다."

— 2018년 3월, 원로회원 이유택

편집실의 정리

이 글이 영가회에 남기는 자리:

  • 영가회 회원이 한 지방자치단체장으로 펼친 안동 정신. 이유택 회원의 송파구청장 8년의 결은 — 영가회를 한 지방자치단체의 행정로 단정하게 옮긴 자리. 〈정로당 어르신 점심 드리기〉·〈골목 호양이 할아버지〉·청소년 민족혼 답사·하회탈춤을 송파에 전파한 자리 — 모든 결의 뿌리에 안동의 숭문·공정·애국이 있었음을 한 회원로 단정하게 짚어 두는 자리.

  • 2005년 4월 8일 안동시·송파구 자매결연. 영가회 회원이 — 한 지자체와 안동시의 단정하게 잇는 자리. 김휘동 안동시장(/archive/saram/myungsa-kim-huigon) 과의 자리에서 시작된 결이 〈한성백제문화제〉와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의 한 호흡으로 단정하게 자리 잡힌 결.

  • 김원 회원의 글(/archive/geul/geul-eunsa-dubun) 이 1977년 영가회 초기의 단정하게 짚어 주신 자리라면, 이유택 회원의 이 글은 영가회 40주년을 한 원로 회원로 단정하게 마무리해 주신 자리. 영가회 결의 시작과 마무리, 두 결이 한 자리에 단정하게 놓이는 풍경.

(※ 본문의 일부 한자·인명·문구 등 OCR 인식이 불완전한 자리는 회의록·책자 원본 보완 시 다시 다듬어 두겠습니다.)

출처: 《영가회 40년사》 353~355쪽 (회원 기고 — 이유택, 2018년 3월 집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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