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을 떠나온 사람
초대 회장은 1940년대 안동에서 태어났다. 해방과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자라 젊은 시절 서울로 상경했다. 그 세대 안동 출신 많은 이들이 그러했듯, 교육과 기회를 찾아 고향을 떠났다. 서울에서 그는 작은 사업을 일으켰고, 세월이 지나면서 뿌리를 내렸다. 그러나 안동을 잊은 적이 없었다. 성공이 커질수록 고향에 대한 빚감이 오히려 짙어졌다는 말을 생전에 여러 차례 했다고 전해진다.
향우회를 만들려 한 이유
1970년대 중반, 그는 서울에 흩어진 안동 출신 지인들과 만날 때마다 이런 생각을 품었다고 한다. 우리가 이렇게 여기저기 있는데 왜 한자리에 모이지 못하는가. 고향을 기억하고 고향 사람들을 돕는 모임이 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 생각이 1977년 실행에 옮겨졌다. 몇몇 지인들에게 연락해 뜻을 모으고, 작은 자리를 마련해 모였다. 그것이 영가회의 시작이었다. 거창한 행사도, 선언문도 없었다. 그냥 고향 사람들이 모인 자리였다.
초대 회장이 남긴 것
1977년부터 1981년까지 초대 회장으로서 그는 영가회의 기틀을 닦았다. 회원 모집, 장소 섭외, 회칙의 초안.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조직을 만드는 일은 보이지 않는 수고의 연속이었다. 재임 중 가장 자랑스러운 성과를 물으면 그는 "사람들이 계속 모인 것"이라고 했다 한다. 단 한 번이라도 모임이 열리지 않으면 조직은 끝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가 쌓아 놓은 그 지속의 전통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출처: 《영가회 40년사》 2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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