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 안내 — 이 글은 김봉구(金鳳求) 회원께서 《영가회 40년사》(392395쪽) 에 직접 기고하신 글을 편집실이 한 호흡으로 정리한 자리입니다. 김 회원은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이자 영가회 6대 회장(20152016, /archive/saram/6dae-kim-bonggu) 을 이어 오신 분으로 — 앞의 〈돈에 대하여〉(/archive/geul/geul-don-daehayeo) 가 금융 교양의 결이었다면, 이 글은 "나는 누구인가?" 라는 가장 오래된 질문에 대한 한 회원의 사상적·영성적 결의 답을 4쪽에 단정하게 펼쳐 두신 글입니다.

1. 나는 누구인가?

한국에서 유명한 스님이 미국 뉴욕을 방문했다.

다음 날 유람선을 타고 맨해튼 일주 관광을 나서 — 유람선 3층에서 시내 전경을 둘러보고 있을 무렵, 그때 멀리서 카메라를 멘 사람과 취재기자가 스님께 다가와서 인터뷰를 요청한다는 결.

"오늘날 세상에서 가장 구역질 나는 게 무엇입니까?"

스님은 잠시 침묵 있다가:

"Who are you?" (너는 누구냐?)

라고 대답한다는 결.

그러나 — FOX TV 의 Jim Roberts 라는 기자는 자기 영화를 가리키면서 자신은 짐 로버츠임니다. 이 인터뷰는 폭스방송국의 패명요(폭스소요로 진행되는 생활송) 이라고 밝힌다는 결. 그리고 다시 스님에게:

"이 세상에서 가장 역치운 것은 무엇입니까?"

라는 질문을 한다. 스님은 폭갑이:

"Who are you?"

라고 대답한다, 기자는 다시 짐 로버츠라고 반복한다는 결.

그래서 이 기자는 — 스님이 영어를 몰라서 동문서답을 한다고 생각한다는 결. 생방송으로 전국에 중계되고 있으므로, 세 번째로 또 같은 질문을 한다, 이번에도 스님은 역시 "Who are you?" 라고 대답한다는 결. 그제 서야 그 기자는 스님의 깊은 뜻이 담겨있는 것을 이해하고 카메라를 끄고 황급히 사라진다는 결.

소크라테스와 절대계의 결

소크라테스는 — "너 자신을 알라" 고 했다는 결. 그러나 학생이 선생님은 자신을 아십니까? 하고 물었더니,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모른다, 하지만 "나는 내가 모른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고 했다는 결.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이름과 모양을 가지고 있다, 현상계에서 보면 그러하다. 그러나 절대계에서는 모든 것은 같은 실체이다."

또 우주에는 서로 반대되는 — 빛과 어둠, 남자와 여자, 소리와 침묵, 선과 악으로 이루어져있다는 결. 그러나 — 반대되는 것은 서로 통한다, 만약에 한 갑은 실체에서 생겨났기 때문이다는 결. 결국 — 모든 것이 이름과 모양이 다를 뿐 실체는 같다는 결.

"이름과 모양은 우리 생각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이름과 모양이 있다는 것은 상대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코끼리를 만지는 장님의 비유

"절대계인 참나의 세계에는 나와 남의 구분이 없고, 시간과 공간이 없으며, 모든 실체는 하나다."

그러나 현상계는 — 바로 내 사람의 장님이 동물원에 가서 코끼리를 만져 보고서는 자신이 옳다고 싸우는 꼴이다는 결.

  • 코끼리 코를 만져본 장님은 — "코끼리는 뱀과 같다"
  • 다리를 만져본 장님은 — "코끼리는 기둥처럼 생겼다"
  • 배를 만져본 장님은 — "코끼리는 벽과 같이 생겼다"
  • 꼬리를 만져본 마지막 장님은 — "빗자루 같다"

"우리는 내면의 너 자신을 알지 못하면 진리도 알 수 없다."

2. 진정한 나를 깨닫는 방법은?

생각·감정·오감·욕망을 가슴이지 알고 — 오직 "모른다" 로 일관한다는 결.

자신의 이름·신분·직업 등을 잊어버린다는 결. 그리고 단순히 나는 "몰라" 라고 말한다는 결. 아주 가볍게 "몰라" 그리고 "깨닫는다" 하면서 모든 것을 잊어버린다는 결. 즉, 모든 것을 내려놓는다는 결. 색감·감정·오감에 집착하지 않는다는 결.

"그것들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을 〈알아차리는 자리〉, 〈생각이전의 자리〉 에선 관찰을 기울인다, 명상을 통해서 그 자리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다, 이것이 진나를 깨닫는(부석을 보는) 비결이다."

오직 모를 뿐(Only I don't know!)

"우리가 참나 자리를 찾지 않아도 이미 텅 비어 신령한 알이 자리잡고 있은 마음속에 작용하고 있다."

차라리 모르겠다고 일관한다는 결. 그냥 모르겠다고만 한다. 이게 도대체 뭐냐? 좀 알아봐야겠는데 하면 더 감춰진다는 결. 모른다고 모른다의 반대로 모르는다가 아니다, 아는지 모르는지 알래로 모르겠다, 관심이 없다, 모든 것을 내려놓는다. 모른다는 것이 확실히 알면, 이것이 바로 견성(見性·참나의 각성) 이다.

3. 올바른 인간의 길은 무엇인가?

하나는 참나 상태로 깨어 있게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깨어 있음을 유지함으로서 일상 생활에서 올바르게 행동하는 일이다는 결. 먼저, 깨어 있는 가짐을 확인한다는 결.

이는 텅 비어 있는 알의 자리인 참나, 양심을 뜻한다는 결. 바로 내면으로의 정(顕) 의 상태이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은 항상 정의 상태에만 있을 수 없다는 결. 거리감이 없다면 이는 바로 양심의 소리이므로, 그대로 실천하면 된다는 결. 바로 외적으로 올바른 행동인 정의(義) 의 실천이다는 결.

"450에 년 전 조선시대의 남명 조식 선생은 이들만 많은 선비들은 은참도와 양심을 본고 다녔다, 오른쪽 허리에 한 은장도 영면에는 경(敬) 자와 의(義) 자가 새겨져 있었다."

이런 외적으로 올바른 행동을 — 양심의 명령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다는 결.

결론적으로, 올바른 인간의 깊은 일상생활에서 — 유교의 사단(四端) 을 실천하는 일이고, 불교에서는 욕바라밀(六波羅密) 을 지키는 일이다는 결. 그리고 기도교에서는 — 우리몸을 산제물로 (神에) 바치고 영적인 예배(찬양과 감사) 를 드리는 일이다는 결.

편집실의 정리

이 글이 영가회에 남기는 자리:

  • 6대 회장의 가장 깊은 사상적 자리. 김봉구 회원의 두 글 중 — 〈돈에 대하여〉(/archive/geul/geul-don-daehayeo) 가 현대 금융 시스템을 짚는 글이라면, 〈나는 누구인가?〉 는 — 인생의 가장 오래된 질문에 대한 한 회원의 답 을 단정하게 펼쳐 두신 글. 두 글이 한 회원의 양면을 받쳐 주는 자리.

  • 한국 스님의 뉴욕 인터뷰 일화로 한 호흡 단정하게 결을 짚으신 자리. 미국 FOX TV 의 기자에게 — 세 번이나 "Who are you?" 라고 답하신 한 스님. 그 결이 영가회에 한 자리를 만든 결.

  • 남명 조식 선생의 〈경(敬)·의(義)〉의 결과 유교 사단·불교 육바라밀·기독교 영적 예배까지 한 호흡으로 짚으신 자리. 영가회가 — 단지 한 모임의 결이나 한 종교에 머무르지 않고, 인류의 모든 큰 결을 한 자리에 단정하게 짚을 수 있다는 점을 김 회원의 글이 보여 주는 자리.

(※ 본문의 일부 한자·인명·외국어·문구 등 OCR 인식이 불완전한 자리는 회의록·책자 원본 보완 시 다시 다듬어 두겠습니다.)

출처: 《영가회 40년사》 392~395쪽 (회원 기고 — 김봉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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