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독립운동의 특성
회원 기고 — 김희곤
안동을 한국 독립운동사의 한 중심지라고 부르는 데에는 충분한 근거가 있다. 한국 전체에서 가장 많은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지역 중 하나가 안동이고, 그 면면을 보면 단순한 양적 규모를 넘어선다. 안동독립운동기념관장으로 일하면서 이 사실을 더 깊이 확인할 수 있었다.
가장 많은 인물
통계만으로 봐도 안동의 독립운동가 수는 압도적이다. 면적과 인구 대비로 환산하면 그 비율은 더욱 두드러진다. 한 작은 고을에서 어떻게 이만큼 많은 사람이 독립운동에 나설 수 있었는가가 한국사 연구자들의 오랜 관심사다.
이상룡, 김동삼, 류인식, 이육사, 김재봉, 권오설 — 이 이름들만 나열해도 한국 독립운동사의 한 페이지가 채워진다. 그리고 이 분들 외에도 이름조차 잘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분들이 안동에서 나섰다.
안동 독립운동의 특성 1 — 양반 출신이 많다
안동 독립운동의 첫 번째 특성은 양반 출신이 많다는 점이다. 다른 지역의 독립운동은 농민, 노동자, 학생이 중심을 이루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안동에서는 명문가 출신, 학자 집안 출신이 적극적으로 나섰다.
이상룡 선생이 대표적이다. 안동의 손꼽히는 양반 가문 출신으로, 자신의 전 재산을 정리해 만주로 떠나 신흥무관학교를 세우는 데 헌신했다. 안락한 자리에 있을 수 있었던 사람이 모든 것을 버리고 망명한 것이다. 이런 사례가 안동에서는 예외가 아니라 흔한 모습이었다.
안동 독립운동의 특성 2 — 학문적 기반
두 번째 특성은 학문적 기반이 두텁다는 점이다. 안동의 독립운동가들은 단순히 무력으로 일제에 맞선 분들이 아니다. 그들은 깊은 학문적 소양을 갖춘 분들이었고, 그래서 독립운동의 사상적 기반을 만드는 데에도 기여했다.
류인식 선생의 협동학교, 이상룡 선생의 신흥무관학교, 그리고 협동학교와 협력했던 여러 교육 사업들은 단순히 일본에 대한 반발이 아니라, 새로운 한국을 만들기 위한 적극적인 교육 운동이었다. 무력 투쟁과 교육 사업이 함께 가는 것이 안동 독립운동의 특징이었다.
안동 독립운동의 특성 3 — 가문 전체의 헌신
세 번째 특성은 한 개인이 아니라 가문 전체가 헌신한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이상룡 선생의 경우, 그분 한 분만이 아니라 그분의 형제, 자손, 사돈, 친지가 함께 만주로 떠났다. 한 집안이 통째로 독립운동에 나선 것이다.
이는 안동의 유교적 전통과 무관하지 않다. 가문이 한 단위로 움직이는 문화 속에서, 한 사람이 결단을 내리면 그 집안 전체가 함께 가는 일이 자연스러웠다. 안동 독립운동의 응집력이 강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신문화의 살아 있는 증거
이런 특성들을 종합해 보면, 안동 독립운동은 안동의 정신문화가 위기의 시대에 어떻게 발현되는지를 보여주는 살아 있는 증거다. 평소 학문하고 예의를 차리던 양반들이, 나라가 어려운 때에 누구보다 먼저 자기를 버리고 나섰다. 이것이 안동의 선비 정신이 본질적으로 가진 힘이다.
지금 우리가 평화로운 시대에 안동의 정신을 이야기하는 일이 가벼워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정신은 결정적인 순간에 어떻게 행동할지를 결정한다. 안동 사람의 깊은 곳에 흐르는 그 정신이 위기의 시대에 어떻게 발휘되었는지를, 독립운동사는 보여주고 있다.
영가회와 함께
영가회 회원들도 이 안동 독립운동의 후예다. 평소에는 자기 일에 충실하면서, 정작 필요한 순간에는 함께 나설 수 있는 분들. 그런 분들이 모인 곳이 영가회라고 나는 믿는다.
40년사를 펴내는 자리에 안동 독립운동의 특성을 간단히나마 정리해두는 것은 우리가 어떤 정신의 뿌리에서 왔는지를 다시 확인하는 일이다. 그 정신이 우리 안에 살아 있는 한, 영가회는 단순한 친목 모임 이상의 가치를 가진다.
출처: 《영가회 40년사》 413쪽 (회원 기고)